앵커: 67년 전 소련 군정에 항거한 신의주 학생들의 반공, 반소운동은 최초의 반공시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어제 서울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노재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자랑스러운 의거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축복의 박수를 보냅시다" 11월 23일, 오전 11시 서울 이북5도청 대강당. 67주년 신의주반공학생의거 기념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1945년 신의주의거에 직접 참가했던 인사 20여 명이 시위로 희생된 동료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젊은 시절 이들의 기상과 용기는 대단했습니다.
엄영보(학생 대표): 의거에 참가했던 사람 중 여기 남쪽에 현재 살아 계신 분은 100명이 조금 안 될 겁니다.
기념식에는 시위 참가 학생들을 비롯해 200여 명의 회원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 박성덕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67년 전 신의주 학생 반공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북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성덕: 오늘 이 기념식이 우리만의 뜻깊은 행사로 끝나지 말고, 공산주의 독재와 폭정에 항거해 싸운 최초의 반공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후대들에 전해야 하겠습니다.
백영철 평안북도 도지사도 추념사를 통해 당시 학생들의 숭고한 반공 희생정신을 회고하고, 영령들의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백영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선배들이 흘린 피가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그 어느 때보다 단결하여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돌아가신 신의주의거 참가자들의 꿈이었던 자유민주주의를 저 북한땅에 반드시 안고 고향에 돌아가야만 합니다.
신의주학생 반공시위는 신의주시 중등학교 학생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1945년 11월 23일 오후 2시를 기해 일제히 시작됐지만, 사전에 대비하고 있던 소련군과 이 지역 인민위원회 보안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돼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날 사건으로 24명의 학생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천여 명이 검거됐습니다.
엄영보: 그때 저는 신의주 상업학교 2학년이었죠. 선두에 서서 신의주로 가는데, 소련의 야크 비행기가 우리를 향해 기총 사격을 했습니다.
소련 군정과 김일성 공산당 세력은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해 여러 기관과 사회단체들과 회의도 열고 간담회도 했지만, 발포 명령자를 알아내는 정도로 그치는 등 책임지거나 처벌을 받은 자도 거의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함흥과 평양에서 일어난 학생시위에서 '신의주의 원수를 갚자'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이 사건은 북한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습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신의주 학생들의 반공, 반소항쟁은 소련 군정 치하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북한 정권 최초의 시민학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