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생부’ 언급하며 부친에게 도움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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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지난 2010년 김정일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 후계자이던 김정은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편지에서 김정남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남이 2010년 6월 29일 김정일 위원장에게 팩스로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겨냥한 '살생부'를 언급하며 부친의 도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편지를 확보해 분석한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남이 "얼마 전 저와 저희 가족과 연관있는 사람이면 모조리 '살생부'에 올려 국가안전보위부 것들이 잡아갔다"면서 "국가안전보위부 것들의 후계자에 대한 과잉 충성 때문인지, 후계자의 지시인지 모르나, 인터넷 상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고 썼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2009년 4월 발생한 '우암각 습격사건' 이후 김정남과 북한 내 그의 측근을 겨냥한 위협이 1년 넘게 지속됐다는 의미라고 대북정보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우암각 사건은 평양 중구역에 있는 특각에서 김정남의 측근들이 연회를 즐기던 중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에 체포된 일을 뜻합니다.

이후 절치부심하던 김정남은 1년이 지나도록 '살생부'까지 나돌며 자신에 대한 위협이 지속되자 부친에게 편지를 보내 이복동생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정남은 편지에서 "후계자는 큰 그림을 그리듯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 빠빠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고 대북정보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빠빠'는 주로 서구사회에서 아이들이 아빠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당시 권력 2인자로 간주되던 장성택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습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수양대군'께서도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약속했는데, 너무 세지시니까 다 잊어버리신 듯하다"고 편지에 썼다는 겁니다.

김정남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점도 명확히 밝혔습니다.

"저는 빠빠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 혁명 위업을 계승할 후계자 반열에 서 본적이 없다"면서 "자질 부족과 자유분방하고 방종스런 생활습관으로 심려 끼쳐드리고 엄청난 사고도 많이 저질렀다"고 썼습니다.

이어서 김정남은 "해외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살고 싶어도 제 신분 때문에 서방 언론의 표적이 되지만 빠빠의 아들 입장에서 당황함 없이 처신하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해외에서 가족들과 살아가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숙연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편지가 당시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됐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보고 체계상 권력 핵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김정남의 편지를 김정일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대북정보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김정남은 "빠빠의 건강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며 "이 편지를 직접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신 보시는 분께서라도 저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길 믿는다"며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편지는 김정남이 마카오에서 평양으로 팩스를 이용해 보냈으며, 같은 내용을 자신의 처에게 이메일로도 전송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