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북한 당국이 상호간 관계 악화의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서기국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질문장을 발표한 게 문제의 발단이 됐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측 조평통 서기국은 지난 25일 남측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 비난하며 7가지 질문을 담은 소위 '공개 질문장'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박 대통령이 표명하는 대북정책의 원칙이 "신뢰인지 대결인지를 밝히라"는 겁니다.
이 같은 공개 질문장의 형식이나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사실상 남측 정부에 전가하는 내용의 질문장은 과거에도 수차례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남측의 대응 방식이 바뀐 겁니다. 과거엔 주로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내고 북측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반박했지만, 26일 통일부는 부대변인 명의의 '보도 참고자료'를 내놨습니다. 입장 발표자의 격을 한 단계 낮춘 겁니다.
사용한 표현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다만 북측의 질문장이 나온 시점을 문제삼았다는 점은 눈에 띕니다.
통일부 박수진 부대변인은 북한이 남측을 상대로 "이렇게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북한의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장성택 숙청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관리하기 위해 북측이 남측과의 긴장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나타낸 겁니다.
이런 가운데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남북 양측의 태도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이나 책임 전가와 같은 구태의연한 북측 질문장의 내용도 문제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남측의 태도도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 남북 당국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샅바싸움을 펼치면서 남북관계의 어려운 상황을 네 탓으로 돌리는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측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한 것과 관련해 통일부 부대변인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남측 정부가 북측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부대변인은 "신뢰인지 대결인지의 문제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측의 조평통 서기국은 지난해 12월 1일에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향해 공개 질문장을 발표하고 박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을 맹비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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