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에 저항 세력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북조선 인민이 고질적인 경제난을 비롯해 자체의 문제들이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으로 발생했다고 점차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저항 세력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힘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북한 정권의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조선에 저항 세력이 뿌리를 내린다는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북한 당국에 대한 인민의 불만은 차츰 반정부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불만은 북한 당국이 강성대국을 만든다며 작년 상반기에 시작한150일 전투를 계기로 불거지다가 화폐 개혁의 실패와 시장의 폐쇄를 계기로 나타나는 경제난 때문에 폭발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대로 저항 세력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력이 북한의 체제상 이렇다할 조직적 행동을 아직 보일 수는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현재 체제를 떠났습니다. 북조선 당국도 이 같은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강온 양면 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까?
기자:
그런 이야기는 미국의 유력한 일간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WP) 3월 24일자에 비교적 잘 나와 있습니다. 신문 보도를 보면 북한 주민의 절반 이상이 해외 뉴스를 듣고 있고 사회 기층의 냉소주의로 국가의 신화가 흔들리며 심지어 엘리트 계층 내에서도 불만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북조선 인민은 북조선이 안고 있는 부패, 불평등의 확대, 만성적인 식량난 등이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 요인, 즉 북한 정권의 능력 부족으로 일어났다고 점차 믿습니다. 북조선 인민이 한국, 미국 등지에서 오는 방송을 듣고 북한이 ‘노동자의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지금까지 지속된 권위주의적인 통치가 흔들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WP는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북한에서는 일상적인 형태의 저항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앵커:
국제 사회에서는 무슨 이유로 북한에서 저항 세력이 커가고 있다고 판단합니까?
기자:
일단 드러난 객관적인 이유로도 그렇게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중앙집중식 경제와 황폐한 공업, 생산성이 낮은 농업,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는 인민과 군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무리한 핵 개발과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 인민 복지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행하려는 후계 세습 등의 요인을 저항 세력이 자라는 온상으로 봅니다. 여기에 덧붙여 북조선 주민이 외부 방송을 듣고 북조선의 현실을 파악하는 상황도 저항 세력이 커가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인민이 외부 정보를 듣고 북한의 고질적인 문제가 외부의 요인이 아닌 내부의 요인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차츰 인식한다는 사실은 북한 정권에 큰 위협이 됩니다.
앵커:
저항 세력이 커가고 있다는 현상은 어떤 사례를 통해서 볼 수가 있나요?
기자:
화폐 개혁의 실패가 단적인 사례입니다. 북한 당국은 신권과 구권의 교환 비율을 100 대 1로 하면서 근로자 월급은 그대로 주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통화 팽창, 즉 인플레이션은 너무나 뻔한 이치였습니다. 또 화폐 개혁은 신흥 자본가의 재산을 뺏어 세력을 꺾으려는 불순한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졸지에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맞고 재산 강탈을 당한 인민이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변하는 일은 너무 당연합니다. 이들은 모두 정부의 횡포와 무능력에 강한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 지도에 활발히 나서는 사실도 이를 뒤집어 보면 저항 세력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과 지도자의 지시가 중간 관리층에게 잘 먹히지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위원장은 중간 관리층에서 저항 세력이 생기지 못하도록 열심히 현지 지도를 이곳저곳으로 나서야만 하고 그래야 안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앵커:
한국의 대북 전문가들은 저항 세력의 형성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기자:
이들은 화폐 개혁의 실패가 체제 이반(離叛)과 저항 세력의 형성을 가속화했다는 견해를 표명합니다. 이에 관한 견해는 2월 18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송영선 의원이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라는 이름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왔습니다. 국방연구원의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특히 화폐 개혁의 실패가 북한 체제의 내구력(耐久力)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왔다”면서 “주민과 지도자 간에 존재했던 ‘도덕적 밧줄’을 약화시켰다”고 진단을 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조명철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화폐 개혁 이후 북한 물가는 10배 이상 올랐으며 결국 경제는 ‘빈곤의 함정’에 빠졌다”면서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매년 8-10% 경제 성장을 해야하는데 외부 도움이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의 박영호 선임연구원은 “북한 주민의 체제 피로도, 화폐 개혁 실패의 후유증, 외부 정보의 침투와 확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강압 수단과 위기감 조성으로 인민을 통제하는 방식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모두 저항 세력의 형성을 염두에 둔 견해입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저항 세력의 형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례가 있나요?
기자:
그런 징후를 보이는 몇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의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경제 챙기기의 전면에 나서는 점입니다. 3월 6일 경제 분야의 함흥 군중대회에 참석한 것이 비근한 사례입니다. 지난해에도 현지 지도의 3분의 2 정도가 경제 분야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의 간부들에게 빈민을 구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전해졌습니다. 북조선에는 화폐 개혁의 실패에 따른 후유증으로 아사자와 집을 잃고서 방랑하는 꽃제비가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 여건만 맞으면 반체제 세력으로 성장하기는 시간 문제입니다. 작년부터 간부의 학습 모임인 ‘간부학습반’을 대상으로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민심을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하여’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여러 번 진행됐다는 점도 있습니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화폐 개혁의 실패와 관련해서 이런 모임에서 사과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앵커:
북한 노동당 비서였다가 남조선으로 탈출한 황장엽 씨는 31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강연하면서 북조선에 이런 세력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기자:
황 씨는 북조선에 군대, 경찰, 적위대 등 김 위원장의 독재를 돕는 세력이 일반 대중보다 더 많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북한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압 통치를 하는 점을 비추어 보면 저항 세력이 가시적으로 생겨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보입니다. 황 씨는 북조선에는 김 위원장을 반대하는 큰 세력이 없다면서 내부 분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곳 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황 씨의 발언도 분명 일리가 있는 진단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북한에 뿌리를 내리는 저항 세력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