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민주화를 열망한 이집트(에짚트) 국민의 반정부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한 가운데, 북한 주민의 의식이 크게 변하는 현상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저항, 변화를 추구하는 북한 주민의 바람을 북한 당국이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초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북․중 국경지방에서 만난 탈북자 문혜련 씨와 림영선 씨. 당시 북한을 떠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문 씨와 림 씨는 김정일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 북한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북한 지도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설명입니다.
문혜련:
수령님 서거하고 나서 김정일 동지는 계속 우리를 굶겼잖아요. 김정은이 올라섰다고 해도 기대하는 것 없습니다. '그저 너희는 너희대로 살아라, 우리는 우리대로 살겠다'는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젠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실패한 화폐개혁 이후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주민의 불만은 더 커졌고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보다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도발에만 나서는 북한 정권을 이해할 수 없는 점도 마찬가집니다. 지난해 10월에 탈북한 김창숙 씨입니다.
김창숙: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전쟁 준비하는 데 저축한 것만 풀어도 우리 인민이 10년은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북한에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는 미국의 민간단체 대표는 미국의 지원과 외부 사람의 접촉을 통해 북한 주민 사이에서 '북한이 유독 못사는 국가'임을 깨닫고 있다고 올해 초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배고픔을 피해 최근 북한을 떠난 중국 내 탈북자들도 북한의 현실이 나아지려면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돼야 하고 중국처럼 개혁․개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일본의 언론기관인 '아시아 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장마당을 통해 북한의 사회구조가 시장경제에 젖어들면서 북한 주민의 사상과 의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대신 새로운 사회가 생기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시마루 대표:
지도자 김정일 동지가 먹여주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은혜로 사는 게 아니라 자기 힘으로 시장에서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이 국가에서 매우 멀어졌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도 많이 희박해졌고요.
실제로 자유아시아방송이 접촉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실시한 민생 정책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북한 주민 사이에는 불신과 생계형 저항이 크게 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군의 장교들마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식량 배급을 요구하고 작업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대다수 북한 주민이 접하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 장마당과 한국 내 탈북자를 통한 외부 정보의 유입, 그리고 휴대전화의 확산 등이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를 돕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대학교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회견에서 자본주의적인 삶이 북한 사회에 많이 침투해 있고 사실상 국가의 감시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란코프 교수:
북한 주민은 녹화기가 있고, 외국 영화를 많이 보고, 외국에서 나온 소문을 듣고, 중국 국경을 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전 김일성 시대에서 할 수 없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의 의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또 북한 주민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국과 외국이 어떻게 사는지' 등을 잘 알기 때문에 만성적인 식량난, 높은 물가, 억압과 통제 등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는 북한 주민의 바람을 북한 당국이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란코프 교수는 진단했습니다. 당장은 강경 진압을 통해 독재 정권의 붕괴를 연장할 수 있지만 붕괴 자체를 피할 순 없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의 언론들은 아직까지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임에 대해 아무런 보도나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이후' 북한의 대학가나 시장 등에서 주민에 대한 감시가 더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굶주림과 오랜 독재정치에 맞서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확산하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 북한에서는 이같은 반정부 시위가 당장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점점 깨어지는 북한 주민의 의식이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변화의 문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