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당국 간 대화를 통한 구체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6일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다음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함께 "실행"하겠다며 공동 명의로 17일 발표한 합의 사항은 5가지입니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지역 체류제한을 원상태로 회복하며, 개성관광을 재개하고, 백두산 관광을 시작하며, 올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한다는 겁니다.
양측은 '공동보도문'에서 "6․15와 10․4선언에 따라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공동의 변영을 위한 협력 사업을 적극 발전시킨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시한 이번 합의 사항들은 대부분 현대그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현 회장도 17일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한국 정부와 사전 조율이 없는 상태로 북측과 이번 공동보도문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현정은: (한국 정부와) 사전 조율은 없었고, 앞으로 이제 정부와 잘 조율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조율 없이 현대가 먼저 합의하신 겁니까?
현정은: 원하는 거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해서, 이번에 다 이야기를 드렸고.
실제로 이번 5개 합의사항 중 남측 정부와 협의 없이 북측이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건 육로통행과 체류제한을 해제하는 것뿐입니다.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남측 정부가 아니라 민간인 사업자를 협의 대상으로 삼은 데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의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합니다.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입니다.
조봉현: 북한의 입장에서는 현 회장이 남측 정부에서 온 준 특사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합의를 통해서 남측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한 현 회장이 이번 ‘공동보도문’을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발표한 것은 ‘무리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입니다. 하지만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중단되면서 눈덩이처럼 적자가 불어나자 기업의 생존을 위해 현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조봉현 위원은 추정합니다.
조봉현: 현대의 입장에서는 남북 당국 간 화해와 협력이 없이는 현대의 사업 자체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대의 사업 외에도 당국 간에 풀 수 있는 과제도 가져가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런 부분에서 답을 요구했던 걸로 판단됩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한국 정부는 현 회장이 들고 온 북측과의 합의 사항을 놓고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선 통일부는 현 회장의 입을 통해 한국 정부가 북측 지도부에 전달한 내용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현 회장은 대북 특사가 아니라 대북 사업자 신분으로 북한을 찾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통일부는 현 회장이 남북관계 현안별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설명을 내놓으며 한국 정부는 이날 발표된 공동보도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입니다.
천해성: 이번 합의는 어디까지나 민간차원의 합의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합의사항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한 구체적인 합의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북 당국 간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앞으로 남북 당국 간 협의를 하겠다고 말한 이유는 5개항의 합의문에 긍정적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남측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맞물려 실행돼 남북 당국 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해성 대변인입니다.
천해성: 특히 이번 공동보도문 내용 중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서 정부는 남북 적십자 회담이 빠른 시일 내에 개최되어 추석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 대화가 재개된다고 해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습니다. 현 회장과의 만남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말했지만, 한국 정부는 관광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재발방지 대책과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기존 3가지 선결조건을 17일에도 재확인했습니다.
개성관광을 재개하기 위해서도 관광객의 신변안전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천 대변인은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통해 북측에 들어가는 현금이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혹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게 한국 내 일부 당국자들의 지적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핵 진전 상황과 남북관계를 연계하는 대북정책의 원칙 하에서 미․북 간 대화의 진척 상황과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종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