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화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조선국영보험공사 (KNIC)와 알리안츠와 로이드 등 유럽 재보험회사가 4400만 유로, 미화 56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놓고, 영국 법원에서 한 달 가까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 싸움은 담당 판사가 유럽 재보험회사측이 제기한 북한의 국가범죄 (North Korean State Criminality) 부분은 영국 법정에서 주권 면제 특권에 의해 배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기 (non-justifiable) 때문에 삭제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어가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5일 입수한 재판 관련 서류에 따르면, 유럽 재보험회사측은 북한 측이 고려항공의 헬리콥터가 3년 전 평양 인근의 창고에 추락하면서, 창고 건물과 건물 안의 구호물자들이 불타버렸고,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보험금을 청구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기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을 조장하고 허가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정부 혹은 노동당의 고위 관리들 (senior officials)라고 지목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집니다. 우선 문제의 구호 창고는 북한정부가 소유하고 있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노동당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려항공은 사기행위를 벌여서 얻는 사적 이득이 없는 만큼, 상부의 지시로 추락 사고를 조작했고, 무엇보다도 북한은 외화를 벌기 위해 광범위하게 범죄 행위에 연루된 '범죄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재보험회사측은 북한의 국가 범죄와 관련해, 지난 1970년대부터 북한 당국이 연루돼 마약을 몰래 팔고,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이 여러 가지 국제 범죄를 저지른 사례를 하나하나 열거했습니다. 또 북한 당국이 미국 달러, 담배, 의약품을 위조하고 유통시킨 혐의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담당 판사는 북한의 '국가범죄' 부분은 영국과 북한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고, 북한의 주권적 행위 (sovereign acts)를 영국 법원이 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 측 변론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유럽 재보험회사측은 이 부분은 변론의 중요한 토대라면서, 진행 중인 재판을 즉각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럽 재보험회사측은 지난 2일 이 문제는 '시급하게 (urgently)' 해결해야 한다며, 항소법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항소법원의 세 명의 판사는 유럽 재보험회사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단지 보험 계약서의 피보험자가 외국 (foreign state)이어서, 외국을 상대로 재판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며, 담당 판사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더더구나, 유럽 재보험회사측이 북한 측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기를 저질렀다고 재판장에서 주장한다고 해서, 영국과 북한 간의 외교관계가 난처하게 (embarrass)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에 앞서, 조선국영보험공사는 지난 달 중순에 담당 판사의 지시로 북한의 국가범죄 문제가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됐고, 이 문제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는 내용의 편지를 북한 정부에 보냈습니다.
조선국영보험공사를 대리하고 있는 엘본 미첼 법무법인은 북한 측이 재판 과정에서 국가범죄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영국 법원에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 외무부도 적절한 경로를 통해 북한의 국가범죄가 재판정에서 논의될 경우, 영국과 북한의 외교 관계가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지 직접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지난달 28일 답변서를 통해 거절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달 중순까지 이어질 법정 대결에서 원고인 북한 또는 피고인 유럽 재보험회사 중 어느 쪽이 재판에서 이길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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