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국 국무부는 현지 시간으로 27일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미국 시민 케네스 배 씨를 구출하기 위해 30일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킹 특사의 방북이 북핵 문제의 해법 찾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국무부는 중국과 한국을 거쳐 현재 일본을 방문 중인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30일 북한으로 건너가 31일 귀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방북 목적은 10개월째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 시민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를 구출하는 겁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미국의 고위급 관리가 북한을 공식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킹 특사는 하루 전 서울에서 기자들에게 "당장 북한을 방문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점을 미뤄볼 때 이번 방북 결정은 중국 측의 북한을 상대로 한 회유와 미북 양측의 막판 협상 끝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말했습니다.
이번 방북 결정은 중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을 찾은 지 이틀만에 나왔습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모종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외형상으로는 배준호 씨의 석방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과거의 경험적 사례로 봤을 때 배준호 씨 석방 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재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서울에 있는 한 당국자도 “이번 킹 특사의 방북으로 미국과 북한이 오랜만에 공식 접촉을 시작하게 된 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킹 특사의 방북은 지난 2010년 11월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에디 전(한국명 전용수) 씨의 석방을 위해 방북했던 2011년 5월 이후 2년 3개월 만입니다.
전 씨의 석방 이후 미북 양측은 고위급 회담을 시작했고, 이듬해 2월 29일에는 북한에 대한 “영양 지원”을 대가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이른바 '2.29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거와 비슷한 긍정적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서울에 있는 이 당국자는 강조했습니다. “킹 특사의 공식 방북 목적은 어디까지나 배 씨 석방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한 “미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해선 북핵 문제의 진전이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습니다.
2.29 합의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지만, 북한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쏘면서 무산된 바 있습니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미국의 제임스 줌왈트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대행이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동아태 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6자회담의 재개 조건과 관련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다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IAEA의 사찰 재개를 북한의 진정성을 판단할 잣대로 제시한 셈입니다.
조만간 한중일 순방에 나설 예정인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북핵 회담의 재개를 위한 조건을 관련국들과 조율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핵과 경제를 병행 발전시키겠다는 노선을 채택한 북한으로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또한 IAEA의 사찰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사찰 대상에 기존의 플루토늄과 관련한 시설뿐 아니라 각처에 숨겨둔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포함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쉽게 풀수 있는 숙제는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배준호 씨의 석방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대화의 재개와 미북 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배준호 씨는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관광객들을 데리고 함경북도 나진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억류됐고 지난 4월 말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를 이유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