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 경험자의 조언①] 크리스토퍼 힐 “미북 정상회담 이전 공동선언 문구에 합의해야…정상 간 협상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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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사상 초유의 미북 정상회담이 이르면 이번 달 안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측과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직 미국 고위 관리로부터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첫 시간에는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로 2005년 9.19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전화 대담에 양희정 기자입니다.

기자: 2005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9·19공동성명을 합의로 이끄신 경험을 토대로 다가올 미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힐 전 차관보 :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는 회담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원하는 지를 분명히 파악한 후 아주 세심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악관 관리들은 중국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 등 역내 관련국들과 더 많이 접촉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측과 추가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분명한 회담 성과를 담은 공동선언문 초안에 합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국 정상들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자: 초안에 담길 가장 중요한 사안은 무엇일까요?

힐 전 차관보 : 미국은 북한에 반드시 '비핵화'에 관해 질문해야 합니다. 비핵화만 한다면, 많은 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비핵화 없이는 협상할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팀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비핵화에 중점을 두라(Keep the focus on denuclearization)"입니다.

기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힐 전 차관보 : 저도 개인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모부와 이복형 등 수 백 명을 숙청한 것은 긍정적 신호가 아닙니다. 하지만, 비핵화 대화를 직접 추진하려 하는 것은 아버지와는 다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지도자이고 어떻게 아버지와 다른 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가 왜 대화에 나섰는지는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자 한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그가 무슨 이유로 핵을 포기하려 하는지 추측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로 상황이 나쁘다는 걸 인정했다고 해서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앞으로도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기자: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재개 문제 등 대북 경제협력이 거론되면서, 미북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최대한의 대북 압박 정책과 한국의 경제 교류가 동맹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힐 전 차관보 : 판문점 선언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한국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미국도 남북한 간의 대화 주제는 미북 대화나 6자회담 틀에서의 대화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뜻밖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관련국들 간의 협의와 조정(coordination)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자: 협상 기술에 대한 또 다른 조언을 하신다면요?

힐 전 차관보 : 북한과 협상할 때, 협상장에 오래 앉아 있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합의를 했다고 생각해도 북한은 또 다시 문제를 제기하곤 합니다. 협상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는 원처럼 빙빙 돌아갑니다. 그래서 한 가지 사항을 두 번 논의하지 않겠다고 아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유연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되 한편으로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단호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기자: 마치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오늘로 돌아가는 영화처럼 판문점 합의 내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데요.

힐 전 차관보 : 아시다시피, 많은 내용이 과거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맹국과 관련국과의 충분한 협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다른 묘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뭔가 새로운 해결책이 있을 지 찾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자: 북한이 합의를 하고도 약속을 저버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힐 전 차관보 : 제가 경험한 바로는 북한이 검증 과정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합의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을 아주 철저히 준비하고 정상회담 이전에 공동성명에 미리 합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 협상에서 피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힐 전 차관보 : 처음부터 미리 보상을 하지 않도록 아주 주의해야 합니다. 모든 보상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또한 비핵화를 마무리해야 하는 기간을 분명히 못 박아 두어야 합니다.

기자: 비핵화에 걸리는 적당한 시간이라면?

힐 전 차관보 : 수 개월입니다. 수 개월 이내에 여러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현지에 사찰팀을 보내 핵물질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핵물질을 반출하는 데 합의하는 등의 조치입니다. 기간을 정하지 않으면 북한은 수 십 년 후의 비핵화를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자: 북한의 인권 문제가 미북 대화에서 제기 될까요?

힐 전 차관보 : 인권문제가 미북대화에서 제기되길 바랍니다. 미북 관계 정상화나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것은 핵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 지금까지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로 2005년 9.19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부터 미북 정상회담에 관해 들어봤습니다. 전화 대담에는 양희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