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해 추모하는 정부차원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사업이라고 합니다. 남측 국방부가 유해발굴과 관련한 홍보를 벌이고 있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적은데요. 이에 유해발굴감식단 발굴 6팀장인 류수은 중사는 "이 나라를 6.25전사자들이 지킨 만큼 유해발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강원도 양구군의 유해 발굴 현장 인근에서 목용재 기자가 류수은 중사를 만났습니다.
목용재: 류수은 팀장님 안녕하세요. 먼저 백석산 유해 발굴 현장이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류수은: 백석산 현장은 1951년 9월부터 북한군 12사단과 32사사단, 국군 7사단과 8사단, 미군 2사단 9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이곳은 저희가 2000년 초부터 발굴을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9분의 신원 확인을 마쳤습니다. 2015년에는 미군 전사자를 찾아서 지난해 4월 한미 공동으로 봉안식을 실시했습니다.
목용재: 이곳에 전사자 유해가 몇 위 정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십니까.
류수은: 확실한 것은 대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12만 4000여 분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 지역에 분포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목용재: 백석산 일대는 올해 들어서는 지난 15일에 발굴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사자 유해가 어떤 장소에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추정하는지 궁금합니다.
류수은: 올해 백석산 일대의 발굴은 이번주 월요일부터 발굴을 실시했습니다. 그 지역 선정은 과거 전투기록을 의미하는 ‘전사’에 따른 겁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는 조사팀이 있는데 이 팀은 6.25 전쟁 당시 진지나 유품, 개인호, 교통호 등이 분포돼 있는지 확인합니다. 또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발굴 지역을 선정합니다. 이를 토대로 이번에는 저희가 5분의 전사자를 찾아냈습니다. 일부는 수습해서 인제에 위치한 감식소에 안장했고 일부는 정밀 노출 작업중입니다.
목용재: 정밀 노출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류수은: 전사자들이 땅속에 있기 때문에 붓으로 흙을 털어내는 겁니다. 유해를 분석해 피아 판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밀하게 하지 않아 그 유품과 유해가 유실되면 그분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붓이나 트라울, 스파츌라 같은 연장으로 유해를 정밀하게 노출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여러가지 연장 이름을 얘기하셨는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류수은: 붓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붓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파츌라는 세심한 작업을 위해 끝이 뾰족하고 길다란 도구입니다. 그것으로 유해와 유품 사이에 끼어 있는 흙이나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발굴 작업을 하다 보면 나무뿌리도 엉켜있는데 이럴 때는 가위로 나무뿌리를 제거하면서 발굴을 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전사자들이 땅에 묻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사자는 땅위에 쓰러지는데 왜 이분들이 땅속에서 발견되는지 이 부분도 궁금합니다.
류수은: 전투가 끝난 이후 전사자분들은 땅 위에 산재돼 있습니다. 누가 묻어주지 않으니까요. 일부의 경우에는 전우가 가매장을 해주지만 대부분은 산 위에 산재돼있습니다. 6.25 전쟁 이후 67여 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낙엽이 떨어지고 모래바람이 불면서 흙이 점차 쌓인 겁니다. 보통 지표면 밑 30~40센티 사이에서 유해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목용재: 그만큼 전사자들이 돌아가신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말씀이시죠.
류수은: 네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나라가 힘들어서 그분들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저희가 그분들을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앞서 잠깐 말씀해주셨는데요. 발굴 절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류수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는 조사, 발굴, 감식, 후속조치과가 있습니다. 발굴과 감식이 총 네단계로 나뉘는데요. 최초 발굴지역을 선정하는 것은 조사과에서 합니다. 지역 탐사, 탐문, 전사 연구, 증언 청취 등의 작업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부합하면 5개년 계획 세워서 발굴 지역을 선정합니다. 발굴팀은 발굴지역에 있는 부대 병력 100여명, 즉 한 개 중대급 병력을 지원받습니다. 그래서 짧게는 2주, 길게는 두달 정도를 함께 발굴합니다. 이렇게 식별된 유해들은 발굴팀이 정성스럽게 노출시켜서 오동나무관에 입관시킵니다. 그리고 임시감식소에 옮겨집니다. 그곳에서 피아 판단이 이뤄집니다. 이후 국군 유해는 현충원 중앙감식소로 옮겨져 전문감식관들과 정밀 장비들에 의해 감식이 이뤄집니다. 나이, 사망 원인, 성별 등 모든 것을 감식하는 겁니다. 발굴을 하다보면 적군 유해도 나오는데요. 북한, 중국군 유해도 많이 출토됩니다. 북한군의 경우 파주 적성에 위치한 임시 안장소에 옮겨지고 중국군은 중국에 송환합니다. 북한군은 과거 송환 의견을 제시했었는데 북측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임시로 적군 묘지에 안장돼 있습니다.
목용재: 오동나무관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건가요.
류수은: 오동나무는 옛날부터 관으로 쓰기 가장 좋은 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땅속에서 빨리 썪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동나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다른 질문인데요. 일반인들이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류수은: 저희가 유해발굴 체험과 관련해서 1년 단위로 대학교 별로 공문을 발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유해발굴 체험이라는 목록이 있습니다. 거기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목용재: 이번에는 남북청년들이 같이 발굴 작업을 했습니다. 이런사례가 첨이라고 하는데요.
류수은: 저희는 남한에 있는 관계자 분들을 위주로 체험행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발굴을 하다보면 북한군과 중국군도 나오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지만 지금은 탈북 대학생이 남한으로 와서 이런 현장 본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유해발굴에 대해 아는 분들은 유가족 정도 입니다. 초등학교나 대학교 등 학교 행사에 가보면 6.25전쟁이 언제 발생했는지조차 모르고 또 저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어떤 조직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국민들이 유해발굴이라는 사업을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용재: 유가족들을 많이 만나실텐데요.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류수은: 유가족분들도 만나고 참전용사도 만납니다. 특히 참전용사들은 본인의 부하, 동료들을 잃었기 때문에 마음 속에 이런 아픔을 담아둡니다. 현장에서 80~90세가 넘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동료를 그리워하시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습니다. 또 유가족회에서도 현장에 많이 옵니다. 대부분 전쟁 고아이십니다. 그분들이 아버지에 대한 편지를 써서 오시는데요. 아버지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고 오시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편지 내용을 보면 나이는 70~80세가 넘었지만 그때 당시 어린 마음이 편지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보고싶어요. 유해라도 찾고싶어요”라면서 하염없이 우십니다. 발굴 작업을 하는 장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 힘을 내서 한분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용재: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류수은: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