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1960년대 초 북한에서 확산된 김일성 우상화를 지적한 북한주재 동독대사관의 외교 전문이 지난 8일 김일성 사망 20주기를 맞아 재조명됐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1960년대 초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가 확산돼 방, 교실, 공공건물 어디에나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고, 김일성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 지어진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는 크고 작은 김일성 동상이 적어도 12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정책연구소 우드로윌슨센터가 ‘북한 국제문서화 작업’의 일환으로 번역한1961년 3월 평양주재 동독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 외교전문에서 밝혀졌습니다.
동독대사관은 비밀 외교전문에서 당시 김일성 우상화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북한에서는 당과 주민이 얻는 것은 모두 김일성 덕택으로 선전하면서 영상자료 등에서 북한 공산당의 생성과정 등에 대해 정확히 묘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은 또 이른바 ‘조국해방’에 있어서소련의 중추적 역할을 축소하고 김일성의 업적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하면서 ‘김일성 신화’를 창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위대한 영도자의 현명한 가르침’이라며 김일성을 선전하는데 집중하고 모든 기록물이나 행사에서 이른바 ‘김일성 동지’를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은 그러면서 북한은 소련, 폴란드, 독일 등 주변사회주의 국가의 원조로 얻은 성공까지도 ‘외부의 도움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성취한 결과물로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드로윌슨센터가 2006년부터 추진해 온 옛 공산권국가에서 수집한 방대한 양의 비밀 외교문서를 분석하는 ‘북한 국제문서화 작업’을 이끈 제임스 퍼슨 박사는 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김일성 우상화는 1967년 이후 더 확산됐다고 전했습니다.
제임스 퍼슨 박사 : 1940년대 후반에 이미 김일성을 '수령'이라고 부르는 등 우상화 작업은 있었습니다. '수령'이라는 단어가 당시 한 두번 언급되었는데, 1967년 유일사상체계가 시작되면서 '수령'이라는 말이 훨씬 자주 사용됩니다.
김일성 1인지배체제가 확립된1967년부터 추진된 ‘유일사상체계’란 당과 주민 전체가 김일성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대로 따르도록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주체사상으로 그들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북한정권의 핵심사업을 말합니다.
한편, 동독대사관은 외교전문에서 귀국선을 타고 북한에 간 재일교포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1960년말까지 54차례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재일교포가 5만 3천명에 달하고 이들 중 300명의 과학자와 예술가, 3명의 의사 등 전문가도 수 백명이 포함돼 있다고 전문은 전했습니다. 북한은 1961년 2월 일본의 독감을 이유로 귀국선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평양주재 동독대사관은 귀국자들이 당시 일본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자전거, 시계, 가죽옷, 녹음기 등을 파는 ‘암시장’이 등장하고 재일교포 귀국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평양에 몰려가는 등 통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