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이란식 핵해법’ 북한에도 통하나?
앵커: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이란에 대한 제재가 지난주 마침내 해제됐습니다. 핵개발로 유엔의 제재를 받는 유일한 나라가 된 북한은 이란 핵협상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긴급기획 ‘해제된 이란제재, 강화되는 북한제재’ 제1편 정치적 측면을 양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은 핵개발 동결 결단을 통해 핵협상 타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란의 사례를 북한이 따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블링큰 부장관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3국 외교차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이란의 방향을 고려하면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한 이후 줄곧 이란의 성공 사례를 북한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강연에 나선 블링큰 부장관입니다.
블링큰 부장관: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국제 사찰단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여기서 북한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이를 유념하기 바랍니다.
블링큰 부장관은 이란 핵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란이 핵개발을 먼저 동결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협상을 통해 포괄적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여유를 이란이 먼저 만들어줬다는 설명인데 이는 북한에도 핵동결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먼저 변화를 보이면 미국은 대화와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으며 이란 핵협상 타결과 제재 해제 같은 일이 북한에도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과 대이란 제재 해제로 미국의 강한 외교가 결실을 맺었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미국은 적들과 외교관계를 추진하는 데 결코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이란은 결코 핵폭탄을 손에 넣지 못할 것입니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 경제제재가 해제된 것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다가 원유 수출, 금융 거래 등을 금지 당했고 미국은 특히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까지 제재하는 초강경수를 통해 이란의 자금줄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해 7월 타결된 핵합의 의무조항을 이란이 이행했다고 확인하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 금융제재를 해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은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을 재개하게 됐고 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가능해졌습니다.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계속된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17일 의회 연설에서 “이란이 역사의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고까지 말하며 그 의미를 크게 부여했습니다.
로하니 대통령: 이란은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이란의 관심에 부합해 세계와 상호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란 핵협상 방식에 주목하는 것은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은 지난 17일 이란 정부 당국자에게 서한을 축하 서한을 보내면서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엄중한 한반도 상황에도 교훈을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조준혁 한국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이란의 성실한 합의 이행을 높게 평가하면서 강력한 대북제재 방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관련국들의 단합을 통한 끈질긴 노력과 이란의 전략적 결단, 그리고 성실한 합의 이행이 있었기에 대이란 제재 해제가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강력하고 포괄적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채택 노력을 가속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지난주 한미일 3국은 일본에서 외교 차관 협의회를 열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철저하고 포괄적인 대응을 통해 실질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시급히 취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결국 국제사회의 단합된 목소리로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고 이란식 해법을 북한도 따르라는 압박인데 과연 이러한 접근법이 실효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지난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미국이 대북제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제재를 받고 있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쿠바나 이란, 짐바브웨, 미얀마보다도 적은 수의 북한 관련 단체가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라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하원은 지난 12일 본회의를 열어 북한 정권에 대한 포괄적 대북제재안 즉 ‘2016 대북제재 강화법안(H.R.757)’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이 초당적 법안은 북한의 돈줄 차단을 위한 대북 금융제재 강화가 핵심입니다.
특히 북한과 불법으로 거래해온 제3국 기업과 개인 등도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로이스 위원장은 법안 통과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전략적 인내’ 대신 더 ‘강력한 제재’라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습니다.
로이스 위원장: 북한은 미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입니다. 이런 위협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게 만든 이른바 ‘이란식 핵해법’이 북한엔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와 별 거래가 없는 북한엔 제재가 이란 만큼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북한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선 핵동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미국 사회과학원(SSRC) 리언 시걸 박사의 분석입니다.
시걸 박사: ‘이란식 해법’이 북한 핵문제에 적용 가능한 부분은 미국이 이란과 관계 개선에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는 점입니다. 이란이 먼저 핵동결에 나선 것처럼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전제 조건을 붙이고 있지만 북한은 이에 절대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걸 박사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강화된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도 북한 핵문제의 ‘이란식 해법’ 적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북 제재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제재로 인해 북한이 타격을 입어야 하는데 아직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그런 지렛대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고스 국장은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 정권이 제재를 받을 경우 생존이 어려울 정도의 수준으로 외부 경제와 연동돼 있을 때만이 제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핵과 안보 문제 외의 금강산 관광 문제 등 경제적 측면의 대북 개입(engagement) 추진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제2편- 대비되는 이란과 북한의 경제전망
앵커: 이란이 국제사회와 맺은 핵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그 동안 이란에 부과돼왔던 경제?금융제재가 전격 해제됐습니다. 국제사회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란과 달리 북한은 여전히 핵?경제 병진정책을 내세우며 고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비되는 이란과 북한의 경제전망을 박정우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국제사회와 이란 간 역사적인 핵 협정의 성공적 이행에 따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된 지 사흘만인 19일.
이란 중앙은행의 발리올라 세이프 총재는 독일, 일본 등의 은행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산을 성공적으로 돌려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날 해제된 이란의 동결자산 규모는 약 320억 달러 규모에 이릅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방송은 이란 은행의 국제금융 책임자들이 전날 중앙은행 건물에 모여 그 동안 배제됐던 국제금융체계에 신속히 재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관해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프레스TV: 은행들은 이제 국제은행간 결제망에 다시 접속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필요한 절차를 최대한 빨리 밟아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란은 앞으로 미국과 유럽연합이 동결했던, 최대 1천억 달러에 이르는 해외자산을 되찾게 됩니다.
동결해제된 해외자산은 유럽 에어버스사가 제작한 민항기 114대 도입을 포함해 그 동안 경제제재 탓에 엄격히 제한됐던 수입품 구매에 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경제제재로 생필품 부족 등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이란 국민은 크게 들뜬 표정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습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부국이었지만 수출길이 사실상 막혔던 이란은 곧바로 원유 50만 배럴을 수출해 낙후된 경제재건을 위한 자금조달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미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아 이란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란의 기업인들도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CNN : 매우 흥분됩니다. 이란 기업인들은 이 순간을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핵무기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10년 가까이 부과되면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던 이란으로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잡게 된 겁니다.
이란이 이처럼 핵 포기를 통해 새로운 경제도약의 길로 접어든 것과 달리 북한은 올 초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4차 핵실험을 강행해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세 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엄격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은 이번에도 추가 경제제재가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준비중인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에 따르면 자산동결 대상과 대북 수출금지 품목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교역금지가 더욱 엄격해질 가능성이 커 보여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더 고립되는 게 불가피해질 전망입니다.
미국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자연자원방어위원회(NRDC) 강정민 박사는 북한이 중국과도 서먹서먹해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강정민: 그렇게 하지 말라고 계속 경고했는데도 북한이 중국에 알리지도 않고 핵실험을 단행했으니까 일단은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경고와 함께,….
북한의 고립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강조해온 인민생활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할 게 뻔합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한의 핵실험이 전쟁 억제력을 갖춘 상태에서 북한식 경제부흥을 일으키려는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담당 국장의 해석은 정반대입니다.
존 메릴: 북한으로선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게 되면 경제 발전을 이루기가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북한이 낙후된 경제 발전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중인 경제특구 지정을 통한 해외자본 유치 역시 해외기업들의 외면으로 힘들 전망입니다.
이란의 경우도 경제제재 해제가 임박해서야 해외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위해 테헤란으로 다시 몰려 들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임은정 교수는 김 제1비서의 통치 방식이 충격요법을 통해 국내외적 위기를 벗어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은정: (미국의 관심 유도를 위해) 점점 더 강수를 두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북한 국내적으로도 (핵실험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하는 압박을 느끼지 않았나,….
임 교수는 북한이 핵 포기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이란 방식' 대신 핵과 경제 개발 동시 추진이라는 병진노선을 고집하면서 경제재건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임은정: 병진노선이 북한 정권의 생명연장을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이라고 평양의 지도자들은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북한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
김 제1비서로선 북한경제 발전에 방해가 될 게 뻔하지만 정권의 생존전략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2002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나란히 '악의 축'으로 지목당했던 같은 처지의 북한과 이란.
핵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복귀하고 있는 이란의 달라진 위상은 북한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