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하루아침에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됐습니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 정권이 자행한 숙청가운데 가장 냉혹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체포하는 사진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북한 중앙TV: 장성택 일당은 당의 통일과 단결을 좀먹고,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저애하는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이로써 김정은 정권 들어 2인자였던 장 부위원장이 김 씨 일가 3대가 자행한 숙청가운데 가장 참혹한 숙청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 부위원장이 북한 핵심 권력가였던 동시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로, 김 씨 일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티우 사무총장은 9일 김 씨 일가가 '정적'을 이처럼 공개 체포한 사례는 1972년 이후 처음이라며 김정은 제1비서의 장성택 숙청방식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비슷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티우: 김정은 제1비서도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이 많은 장성택을 제거하면서 김일성 유일지배체제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자신의 체제를 확립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1956년 8월 연안파와 소련파의 핵심인물이었던 최창익과 박창옥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반당종파로 몰아 숙청했듯이 김정은도 이 숙청 방식을 본받아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는 분석입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당시 8월 전원회의는 경제문제를 토의하는 자리였지만, 김일성의 1인 지배를 반대하는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하는 자리로 변질했고, 최현을 비롯한 빨치산 세력들은 권총을 빼들고 난동을 부렸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서는 노동당 회의가 '인민재판' 형식으로 열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반당종파로 숙청된 정적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처럼 장성택도 재기의 가능성도 완전히 박탈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969년에 숙청된 김창봉 민족보위상이나 1967년에 숙청된 갑산파의 주역 박금철도 '인민재판' 형식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국의 대북매체들은 이 같은 전례로 볼 때 반당반혁명 분자로 체포된 장성택의 경우, 이미 북한 내부에서 처형됐다는 소문도 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장 부장의 숙청은 그가 김 씨 일가의 가계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이번 숙청으로 장성택이 김 씨 일가와 완전히 단절됐다는 메시지를 외부에 공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가 이른바 백두혈통, 즉 김 씨 가계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측근들에게 보여주어 극악한 공포심리를 심어주었다는 지적입니다.
김정일 사후 어린 지도자의 후견인으로, 또 김 씨 일가의 사위로 근 40년간 살아왔던 장성택은 1인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 희생양이 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