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남한의 어느 젊은 영화 감독이 지난 주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소신있는 발언을 해서 주목받았는데요. 주인공인 장은연 감독은 "북한은 적이 아니라 '우리'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2일 서울에 있는 청와대에서는 외교안보 분야 업무보고가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지난 6일 제4차 핵실험을 단행한 터라 ‘강력 대응’ 방안이 보고 내용의 주를 이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 영화 감독에게 발언의 순서가 주어집니다. 문화예술인 자격으로 초청받아 청와대를 찾은 장은연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3분 정도. 발언의 요지는 ‘그래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것. 당시 ‘강력 대응’ 분위기와는 상충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장 감독은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장은연 감독 : 요즘 들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남'도 아니고 이제 '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너무 남북관계가 안 좋다 보니까요. '우리'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되지 않을까라고 말씀드렸고요. 시기가 시기인만큼, 저는 그냥 제가 생각한 바를 말씀드렸는데, 시기와 맞물려서 제가 좀 상반된 이야기를 한 것처럼 된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장 감독은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에 2014년과 2015년 참여해 30여건의 영상물을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편지를 제작하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공감했고, 그러면서 북한은 이웃나라가 아니라 ‘우리’라고 느끼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은연 감독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강경 대응 발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남북은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전에 행사 주최 측에 예고했던 것보다 발언의 강도도 더 셌다고 말합니다.
장은연 감독 : 알고 계셨는데, 제가 대략적으로 써드린 내용과 조금 달라서 조금 당황하긴 하신 거 같아요.
장 감독은 대통령이나 외교안보 분야 장관들과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들도 “경청해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장 감독의 발언 이후 “좋은 영화로 국민의 통일 여망을 북돋는 것이 통일 시대를 여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며 격려해 줬다고 전했습니다.
장은연 감독은 “대북 정책이 강경할 때는 강경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대전제는 어떻게 하면 통일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여부와는 별개로 통일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장은연 감독은 지난해 통일부가 주최하고 영화산업고용복지위원회가 주관한 ‘평화와 통일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중편 부문 대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2020년 남북 왕래가 가능해진 한반도를 배경으로 남한 소년과 북한 소녀의 첫사랑을 그렸습니다.
장 감독 자신도 과연 2020년에 남북한 청소년이 상호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는 미래의 한반도에 대한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장은연 감독 : 너무 가깝나요? 2020년이라고 하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요. 그래도 저는 그 미래에는 이런 것들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2030년, 2040년이 되더라도 그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 감독은 앞으로도 북한과 관련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이산가족의 영상편지를 제작하면서 갖게 된 감정과 기억이 각인돼 있다”면서 “내 영화를 통해 그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1979년생인 장은연 감독은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영화와 광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2010년엔 단편 ‘내 맘도 몰라주고’로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에 초청됐고, 오스트리아 에벤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