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 북한의 '승차 거부'로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김정은 시대 달라진 대남 전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거듭된 화해 손짓에도 당국간 회담은 물론 민간교류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대외전략에서 남북관계가 과거보다 중요하지 않게 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사실상 실전배치를 눈앞에 둔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핵 개발 과정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북한 스스로 핵 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핵 정책이 과거 김정일 때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공세적이라고 평가합니다. 핵 정책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던 데서 벗어나 핵 보유를 제도적으로 공식화하고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 핵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중국의 말도 듣지 않은 채 훨씬 더 과감하게 위험 부담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핵 전략은 김정일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비핵화 대화는 거부한 채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해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 헌법 전문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한 데 이어 이듬해 새 국정목표로 '경제-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핵 보유 법제화 작업까지 마무리했습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한 기술적 향상에도 주력해왔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2월 9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토론회): 북한이 오는 2020년이 되면 20개에서 100개 사이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그에 비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평가는 좀 더 비관적입니다. 북한은 지난 해 한반도와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스커드와 노동을 비롯해 괌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ICBM 개발만이 남은 상태입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아버지보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의 경우 핵과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군사력의 과시를 통해 부족한 리더십을 부각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북한의 대남 전략은 대남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그 군사력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대남 적화통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의 목표이고, 그 목표는 과거와 변함이 없습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다만 김정일 때와 다른 점은 김정은의 경우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해 군사력의 과시를 통해 리더십을 부각하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핵을 체제 생존 수단으로 선택한 김정은 시대의 핵 전략은 사실상 북 핵 문제와 연동해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구조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ICBM급 미사일 '화성-14형'을 비롯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도 당분간 남북 대화보다는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핵 능력을 완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북한이 '화성-14형'을 발사한 것도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독립변수가 아니다. 자신들이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한국측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과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뒷전이고 핵 미사일 능력을 최대한 고도화해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데 전력을 기울이려는 이른바 '통미봉남' 전략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핵 능력의 고도화와 함께 호전된 경제사정도 북한의 대남 전략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 1999년 이후 17년만에 최고치로, 한국의 경제성장률(2.8%)보다 높은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5년간 북한은 2015년 한 해를 제외하고 4년 동안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 등 남북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경제적 지원이라는 당근으로 북한으로부터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견인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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