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측이 지난 7일 군사 당국자 접촉을 갖자며 남측에 보낸 전통문을 놓고 남북 양측이 진실공방으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하루 전 남북 군사 당국자 접촉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난 가운데, 16일 양측은 접촉이 성사된 과정과 논의 내용을 상당부분 공개했습니다. 심지어는 폭로의 양상도 띠고 있어 남측 정부가 오는 30일 갖자고 북측에 제안한 제2차 당국간 고위급 접촉이 성사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 상호 총격 직후 북측이 남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각서’를 보내 “이번 사태를 수습할 목적으로 귀하와의 긴급 단독 접촉을 가질 것을 정중히 제의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북측 통신은 각서를 보낸 주체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6일 오전 남측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지난 7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명의로 김관진 실장 앞으로 전통문을 보냈다”고 확인한 바 있습니다. 북측이 황병서-김관진 회동을 원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북측은) 정상을 제외한 최고위급에서 직접적인 대화와 결단, 담판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남측 국방부는 밤늦게 ‘입장자료’를 내고 북측이 내용을 “왜곡”했다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북측은 ‘긴급 단독 접촉’을 제의하면서 황병서가 아니라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을 “특사”로 보내겠다고 밝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북측은 김영철-김관진 회동을 원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날 북측 통신의 보도 내용에는 김영철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 당국자 접촉의 성사 과정을 놓고 양측이 진실공방으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군사 당국자 접촉 당시 북측이 몇가지 제안을 내놨다고 주장한 점도 짚어봐야 할 사안입니다. 남측 정부는 15일 접촉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비공개” 접촉이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양측의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북측이 5가지 사항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의적 적대행위가 아니면 먼저 공격을 하지 말자거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교전수칙을 수정하자고 제안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는 겁니다. 특히 불법어선 단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총격을 미리 막기 위한 문제도 제안했다고 보도한 점이 눈에 띕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북측에 제시한 서해 공동 관리의 개념과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한편으로, 관련된 의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선전하면서 남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복합적 의미가 있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북측이 5가지 제안을 내놨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남측 국방부는 “이는 자신들이 설정한 소위 ‘경비계선’을 남측 선박이 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북방한계선을 무실화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북방한계선은 서해 유일한 해상경계선임을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인 김동엽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서해상에서 지난 7일 발생한 남북 함정간 총포 사격과 관련해 북측은 어떤 식으로든 남측에 항의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본다”면서, “북측은 개별 사안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도로 접촉을 제안한 것인데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된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 당국자 접촉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습니다. 남측에서는 예비역 육군 중장인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수석대표로, 북측에서는 대장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단장으로 참석했습니다. 사실상 장성급 회담이었던 셈입니다. 남북간 장성급 회담은 2007년 12월 이후 7년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