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미북 간 민관 접촉에서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파악하기 전 미북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도발 등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양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7일 입수한 당시 접촉 관련 문서에 따르면 최선희 국장은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북한인들도 많은 미국인들 못지 않게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최 국장은 북한 외무성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서 그에 대해 더 파악하기 전에는 "입 다물고 잠자코 있는 게 좋겠다"(its better to keep our mouths shut until we know more)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국장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북한이 어떤 접근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시급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 대표단은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 재검토(review)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수차례 미국 대표단 측에 문의했습니다.
최 국장은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재검토 결과를 기다리면서 지켜볼 것(wait to see the result)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는 미북관계 개선 혹은 협상 가능성의 "문을 닫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would not take action that might close the door before seeing what emerged)
그러면서 최 국장은 이러한 북한 측 입장을 명확히 숙지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주길 원한다고 미국 측 대표단에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 대북정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입니다.
앞서 한국 한동대학교의 박원곤 교수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측이 당분간 도발을 자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수립 과정을 관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박원곤 교수: 북한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행정부 초기 상황과는 달리 당분간 도발을 삼가할 것으로 봅니다. 당분간 사태 추이를 지켜볼 것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하지만 북한 측은 이러한 도발 자제 원칙의 예외가 바로 내년 2월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측 대표단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도발에 나서면 미북관계 개선이나 협상과 관련된 북한의 희망은 사라질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최 국장은 만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개최될 경우 북한의 대응은 "매우 거칠 것(very tough)"이라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최 국장은 이러한 북한의 매우 거친 대응이 핵이나 미사일 관련 도발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최근 정치적 혼란에 빠진 한국의 박근혜 정부를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란 속내를 내보였습니다.
최 국장은 당시 논의 초반부터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을 파악한 후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이 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접촉에서 북한 측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 궁금해 했습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나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그리고 사드, 즉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도 북한 대표단의 관심 사안이었습니다.
특히 최선희 국장은 사드와 관련해 "북한보다는 중국이 사드에 더 민감하다"고 말해 사드 배치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북한 측의 속내를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시내 워익(Warwick) 호텔에서 열린 이번 접촉에는 미북 양측 모두 5명 씩 참석했습니다.
북한 대표단은 최선희 국장을 단장으로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 그리고 외무성 관리 곽철호(Kwak Chol Ho), 김남혁(Kim Nam Hyok), 황명심(Hwang Myong Sim)으로 구성됐습니다.
미국 측은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단장으로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게리 세이모어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 로버트 칼린 스탠포드대 객원연구원 그리고 제니 타운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부국장이 참석했습니다.
앞서 아인혼 연구원과 칼린 연구원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만나 제네바 접촉 당시 북한 측이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설 지 여부를 무척 궁금해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실제 북한 측은 제네바 접촉 예정일을 며칠 남기지 않고 미국 대표단에 트럼프 진영 인사를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해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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