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올해로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은 가운데 양국 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수교 이래 중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신뢰를 회복하고 양국의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수교 이후 25년 간 한중 관계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수교 첫해인 1992년 64억 달러였던 양국간 교역 규모는 지난 해 2천 114억 달러로 약 33배 늘어났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수입국이 됐고 한국 역시 중국의 수입 1위국이자 수출 3위국이 됐습니다. 양국간 인적 교류도 수교 당시보다 120배나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는 신뢰와 공감대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 외교가의 평가입니다.
2015년 ‘역대 최상의 관계’라고 평가했던 한중 관계는 지난 해 북 핵 문제를 둘러싼 이견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계기로 수교 이래 최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한중 양국이 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공동행사조차 갖지 못한 것은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20년간 중국이 가파르게 부상하면서 한중 관계는 양자 차원을 넘어 국제환경과 구조에 취약한 관계로 빠르게 변화됐습니다. 이는 동북아에서 미중이 전략적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적 입지와 위상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도 그 이면에는 미중 간 힘겨루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입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세종논평): 중요한 점은 사드 문제가 군사적 문제를 넘어서 이제 정치적 상징성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사드 철폐 여부를 한국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의 척도'로 보는 반면 미국은 이를 '굳건한 한미동맹의 척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사안이 왜 서울과 워싱턴, 베이징에서 이렇게 민감한 문제가 됐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향후 한중 관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달 한중 정상회담 당시 사드 문제를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사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는 한 한중 관계 개선은 사실상 요원하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문제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전략적 선택을 강요 받을 상황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영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국내 정치경제적 난제들에 직면한 미중 양국이 가능한 한 비용이 많이 드는 전면적 대립은 피하는 대신, 상호 세력권 확장과 동맹국을 통한 ‘대리 견제와 대응’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북 핵과 사드 문제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심각하게 미중 사이에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한중 양국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제약하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시진핑 지도부가 제시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달성하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고 한국 입장에서는 북 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의 기반을 쌓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중 양국은 따라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양국 간 신뢰가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사드 문제로 인한 갈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이에 따라 사드 문제로 노출된 한중 관계가 직면한 구조적 취약성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중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를 위해 북 핵 문제와 한미동맹의 역할을 비롯해 한반도 미래와 직결된 핵심 의제에 대한 ‘한국 방안’을 수립하고 이 방안과 연동해 대중국 외교의 방향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이동률 교수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북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 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와 함께 한중 양국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제도화와 규범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고위전략 대화를 비롯해 4대 전략대화 기제를 재가동하는 한편, 대중국 공공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 : 다행스러운 점은 한중 양국 모두 사드 문제로 인한 난국을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드라는 전략적 사안을 가지고 한중 양국이 지속적인 고위급 대화,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상호 모순과 대립을 해소하고 이해의 측면을 넓혀 나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 악화는 양국 모두의 전략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전략적 소통을 통한 양국의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