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 내에서는 남북당국회담 성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관측과 함께 북한이 대화 제의를 일축한 채 핵 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한 독자 행보를 이어갈 것이란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후속 조치로 추진했던 군사당국회담이 지난 21일 북한의 무반응으로 무산됐습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으로서는 회담장에 나와 당장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북한이 대화 제의에 대해 즉각적으로 거부 입장을 밝히지 않은 만큼 내부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단 정전협정일인 오는 27일까지 대화 제의는 유효하다며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회담 성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 입장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단을 논의할 수 있는 군사회담은 나쁘지 않은 기회기 때문입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 : 북한의 경우 과거에는 한국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또는 경제교류에 중심을 두면서 군사회담은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 문제로 인해 경제협력 부문이 막혀 있는 상황이고 박근혜 정부 때 재개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의 경우 자신들의 체제 문제에 해당하는 만큼, 북한이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군사 회담을 수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북한이 남북 대화를 통해 한미일간 대북압박 공조를 흔들고, 한미간 갈등을 조장하려는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당국회담의 필요성을 느낀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제시한 내용과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회담에 적극성을 보이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역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국면을 조성하려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실리를 극대화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남북관계의 판을 새로 짜려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북한은 순순히 회담에 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내세워 판을 키우거나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화 제의에 답을 하지 않고 우리의 조바심을 일으키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고 우리가 수용하면 회담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보려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문 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요구한 군 통신선 복원 역시 북한이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그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다음 달 실시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중단과 같은 한국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다만 북한이 회담에 나오더라도 이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핵 능력 고도화 시간표에 따라 추가 도발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북한이 지난 4일 ICBM급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국 정부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핵 문제와 관련해 남북관계 개선은 독립 변수가 아니다. 자신들이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한국측에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고 이와 동시에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와 협상은 응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인 것이죠.
반면 북한이 남북 대화를 통해 당장 얻을 것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일축하며 핵 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한 독자행보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이 남북 대화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 정부의 ‘베를린 구상’에 승차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남북 대화를 시작할 경우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위한 추가 시험 발사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종 협상자인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데 남북 대화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북한이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