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북 인권단체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장소인 풍계리의 갱도 굴착 공사에 동원된 인근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이 보안유지를 위해 희생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한 일본의 대북인권단체 노펜스(No Fence)의 송윤복 사무국장은 13일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위한 함경북도 풍계리 지하갱도 굴착 사업에 인근 정치범수용소 16호 화성관리소의 수감자들이 동원되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송 사무국장 :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안보 문제 위주로 흘러갈 것 같은데, 저는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건설에는 인근 관리소 수감자들이 많이 동원됐다는 것을 여러 경로로 저희가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3월에서 6월에 걸쳐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수용소 수감자들을 한밤중에 열차에 태워 16호 화성관리소로 호송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 사무국장은 당시 수감자의 호송에 관여했던 보위부 요원들이 가족을 데리러 회령에 가서 “화성관리소에 가보니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만 남았을 뿐 관리소가 텅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며 16호 화성관리소 사람들이 핵실험에 동원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송 사무국장 : 그래서 나온 소문들이, 여러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는데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화대군 무수단리 미사일발사장 건설에 동원된 수감자들을 공사가 끝난 후 증거인멸, 비밀 보장을 위해서 수감자들을 죽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말들이 (22호 수용소가 있는) 회령에서 많이 오갔다고 합니다.
송 사무국장은 최근 접한 정보에 따르면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함경북도 관모봉 일대를 중심으로 북한의 특수부대가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수감자들이 핵실험장에서 말살당했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밝혔습니다.
송 사무국장은 또 회령 22호 수용소 경비병 출신의 안명철 씨가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밝힌 내용도 강조했습니다. 1994년 북한을 탈출한 안 씨는 앞서 1992년 함경북도 만탑산 부근의 지하갱도를 파는 데 22호 관리소 내 중봉구역 탄광에서 일하는 수감자 100명을 트럭에 실어서 데리고 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안 씨는 이어 1993년과 1994년에도 이른바 ‘핵기지대건설’ 사업에 탄광에서 일하던 수감자들이 동원됐다고 말했습니다. 안 씨는 또 이 사업에 수 많은 수감자가 동원됐지만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일본의 대북인권단체 북조선난민구원기금은 13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주민을 희생시키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자멸을 자초하는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한 유엔의 조사위원회 설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입니다.
아시아인권의 켄 카토 대표도 이란 등 불량국가와 함께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를 촉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