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정전협정일을 맞아 한국에서는 탈북한 국군포로를 위로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초에는 국회의장 초청으로 오찬간담회가 열렸는데요. 당시 현장에서 노재완 기자가 국군포로 귀환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지금부터 국회의장 초청 귀환 국군용사 오찬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7월 5일 오전 11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있는 한옥식당, ‘사랑재’. 국군포로 귀환자 15명이 국회의장 초청으로 모여 앉았습니다.
전남 구례군에 거주하는 허재석 씨도 눈에 띕니다. 허 씨는 2000년 7월 29일 한국에 귀환했습니다.
올해로 86세인 그는 귀가 좋지 않아 여러 차례 큰 소리로 말해야 알아듣습니다. 오랜 시간 막장에서 탄광 일을 했던 탓입니다.
허재석: 38년 동안 굴 안에서 석탄 캐는 일만 했습니다. 석탄을 캐면 받치는 동판이 있는데 무게만 75kg입니다. 하루에 보통 3동판을 캤습니다.
허 씨는 북에서 1남 5녀를 두었습니다. 이 중 셋째 딸은 탈북에 성공해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날 오찬을 함께한 딸 허명순에게 북쪽에 대한 기억은 불안과 공포 뿐입니다.
허명순: 형제 중에는 저 혼자 나왔어요. 우리 형제들이 다 보위부에 끌려가서 많이 맞았죠. 동생한 명이 얻어맞아 죽었어요. 지금 다른 형제들의 생사는 잘 모릅니다. 엄마는 동생이 죽으면서 돌아가셨고요.
국군포로 허재석 씨는 1952년 3월 입대했으며 휴전을 앞둔 1953년 7월 5일 중공군에게 잡혀 포로가 됐습니다.
허재석: 공교롭게도 오늘이 포로가 된 7월 5일이네요. 그날 전방 초소에 나가 잠복근무하다가 중공군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크게 다쳤는데요. 부상으로 나오지 못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는 강원도 평강에 있는 중공군 야전병원에서 휴전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북한군에 인계됐고 9월부터는 탄광에서 강제노역했다고 허 씨는 말합니다.
허재석: 그때 당시 북에 포로수용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국군포로 대부분은 탄광에 있었습니다. 내무성 산하 건설대가 있어서 거기서 국군포로를 관리했습니다.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국군포로 귀환자들. 탄광에서 악착같이 살아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정전협정 64주년을 맞아 처절했던 북한에서의 생활을 기억하면서 아직 힘들게 살고 있을 전우들의 송환을 위해 정부가 좀 더 분발해주길 희망했습니다.
유영철 국군포로: 국군포로를 데려오려고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압니다. 또한 북한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어서 국군포로 송환이 잘 되지 않은 것도 압니다. 하지만 끝까지 끈을 놓지 말고 남북대화가 열리면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500여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한국 정부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해 남한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입니다. 이 중 40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생존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