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 정부가 북 핵 관련 '레드라인' 즉 금지선의 내용을 처음으로 공식화했습니다. 북 핵 불용의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레드라인의 공식화가 전략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 핵 위협의 레드라인, 즉 금지선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이 점점 그 '레드라인'의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제정치에서 ‘레드라인’이란 한 국가가 상대국가의 국제 행태를 제약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해 놓은 한계선으로, 정책전환의 기준선을 뜻합니다.
한미 양국은 그 동안 레드라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북한에게 ‘레드라인’을 넘지 말하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현재 핵탄두를 탑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무기화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이 최소 1∼2년 내에는 핵탄두를 ICBM에 탑재하는 무기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사실상 완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8일 북한이 ICBM급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이 지난달 결론 내렸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ICBM의 핵심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경우 북한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군 당국은 그러나 1∼2년 내에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 : 최근 북한이 발사한 '화성-14형'의 경우 비행 시간이 47분 12초로, 보통 정상적인 각도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35분 정도면 원하는 목표물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번에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것은 ICBM에 필요한 최대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재진입 기술에 필요한 최대 속도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 부분은 조금 더 분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위협에 맞서 미국이 예방적 군사행동까지 언급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이후에 나온 점도 주목됩니다.
이동민 단국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제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고 한반도 상황을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동민 단국대 교수 : 지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기적 대응을 넘어 구조적인 해결을 모색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레드라인에 도달하기 전까지 한국이 남북관계 복원을 비롯해 한반도에서 일어날 상황을 적극 관리하고 주도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차원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발언이 미국에 대해 대북 선제공격의 기준선을 제시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결국은 대화를 통해 북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핵심으로, 북한에게는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는 한편, 미국에게는 한국과의 협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레드라인을 규정한 것은 전략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할 레드라인을 공개함으로써 한국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레드라인’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 우선 레드라인을 비공개로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맞는데 이를 공개함으로써 우리의 의도를 사전에 상대방에 노출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또한 문 대통령이 언급한 '레드라인'은 사실상 '레드라인'을 넘어 '블랙라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전쟁을 막겠다는 지도자의 의미는 이해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너무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레드라인 설정의 궁극적인 목적인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지하는 효과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레드라인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의 대응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안보 전문가는 통상적으로 레드라인을 규정할 때 상대방이 이를 위반할 경우 군사적 조치를 포함해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과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문 대통령의 언급에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을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어 북한에게 오히려 전략적 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겁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비롯해 북 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레드라인’을 명시함으로써 한국 정부 스스로 전략적 공간을 좁히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이 미국과 협의한 결과인지도 불확실합니다. 미 백악관은 지난 4월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 관련 질문에 모든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차단하는 데 문 대통령 발언의 의도가 있기 때문에 북 핵 위협을 막는데 한미가 이견을 보일 수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불편한 심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