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군부가 한국전쟁 때 전사한 친구의 유해를 찾으러 2013년 방북한 미군 퇴역 장교에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뜻이라며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북한군이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1950년 12월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 미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토마스 허드너 중위.
중공군과 치열했던 교전 중 동료인 제시 브라운 소위가 몰던 전투기가 격추되자 망설임없이 동체착륙을 감행하면서까지 친구를 구출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조종석에 하반신이 낀 브라운 소위는 몇 시간의 사투에도 꿈쩍도 않았고 결국 그를 두고 ‘꼭 구출하러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혼자 구조헬기에 올라야 했습니다.
허드너 중위는 63년 만인 2013년 7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북한을 찾았습니다.
장진호 인근 브라운 소위가 추락했던 지점에서 직접 유해발굴에 나서기 위해 야영도구까지 꼼꼼히 챙겨 방북했지만 결국 폭우로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당시 그와 함께 방북했던 미국의 전기작가 애덤 마코스는 26일 워싱턴의 한미경제연구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허드너 중위의 방북 뒷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마코스는 백인인 허드너 중위와 흑인인 브라운 소위, 두 흑백 해군 조종사의 전장에서 핀 따뜻한 전우애를 다룬 책 ‘헌신 (Devotion)’을 최근 출간했습니다.
그는 당시 북한 군부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뜻이라며 미군유해 발굴에 북한군이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공개했습니다.
애덤 마코스 : 북한 군부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뜻이라며 허드너 중위에게 친구와의 오래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멀리까지 온 데 경의를 표하고 북한군이 브라운 소위의 유해 발굴을 시작으로 미군유해 발굴을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김 제1위원장이 미군유해 발굴작업 재개를 통해 미국과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길 원한다고 느꼈다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마코스는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뒤 곧 바로 이 사실을 국무부에 설명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애덤 마코스 : 며칠 뒤 존 케리 국무장관이 허드너에게 보내는 서신을 받았는 데, 자신이 상원의원 시절 존 메케인 상원의원과 베트남전 실종 미군 유해발굴을 위한 협상으로 베트남과 수교협상을 시작했다면서도 이를 북한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케리 장관이 북한 정권이 핵 개발 야망을 포기하기 전에는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마코스에 따르면 당시 북한 군부는 한 달 뒤 미군 유해발굴단과 함께 다시 방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재방북은 무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