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한 정부가 오는 19일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북한에 제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등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자는 겁니다. 남측은 5.24 대북제재 조치의 해제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남한 정부는 11일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북한에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오는 19일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날 제의는 14일 교황의 방한과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앞두고 나왔습니다. 또한 이날 오전에는 국제기구의 북한 모자(母子) 보건 지원사업에 1천33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는 남한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되면 ‘드레스덴 선언’이나 통일준비위원회 발족과 관련해 북측에 소상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드레스덴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독일 방문길에 내놓은 통일 구상을 뜻합니다. 북측은 드레스덴 선언과 지난달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를 이른바 ‘흡수 통일’ 시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날 고위급 접촉 제안을 놓고 북측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 같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북측이 원하는 5.24 대북제재 조치의 해제 문제 등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남측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접촉 날짜는 변경 가능성이 있다고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남북 당국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고위급 접촉이 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한미 군사훈련 기간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날짜를 수정 제의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합니다.
남측도 19일을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회담 준비에 필요한 기간 등을 고려해 19일을 회담 일자로 제시한 것이며, 북측이 편리한 날짜가 있다면 제시해 달라”는 게 통지문에 담긴 내용입니다.
북측의 입장을 고려하는 듯한 태도이지만, 애초에 19일을 제시한 배경에는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 기간 동안 북측이 도발적 움직임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대신 남측은 의제와 관련해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지문에서 남측은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한 쌍방의 관심 사항”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이외 의제는 북측이 제시하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고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다시 말해, 천안함 사태로 시작된 5.24 대북 제재 조치의 해제 문제나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재개 문제 등도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번 접촉이 성사될 경우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고위급 접촉이 열린다고 해서 그간 쌓여온 남북관계와 관련한 문제들이 일거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남측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접촉은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합의를 본다던가 타결을 짓는다던가 하기 보다는 의견을 서로 나누는 자리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은 지난 2월 판문점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고위급 접촉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 상호 비방중상 중단, 이산가족 상봉 진행 등 3개 사항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남측에서는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북측에서는 원동연 로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국방위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고위급 접촉에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