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남한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앞으로 남북 당국회담이 개최되면 상호 관심사를 모두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나름의 셈법을 갖고 남북관계에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금강산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북측의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당국회담’을 갖자는 데도 합의했습니다. 8.25 합의 공동보도문 6개항 중 첫 번째로 양측은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이 있은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당국회담은 개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측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1일 서울에서 열린 어느 조찬강연에서 “당국회담이 개최되면 남북 상호 관심사를 전반적으로 다 논의할 수 있다”면서 당국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북측에 다시 한 번 촉구했습니다. 어느 급에서 누가 당국회담에 참가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제를 다룰 것인지도 일단 만나서 논의하자는 겁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으니 남측 정부는 이제 남북 당국회담의 개최를 위해 매진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8.25 합의 이후 남측 정부는 줄곧 당국회담의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 (8일 국회 국정감사): 당국 회담과 관련해서 8.25 합의 이후에 여러가지 상황들을 보면서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직 진전된 사항은 없지만 앞으로 계속 노력을 할 거고요.
홍 장관은 20일 서울에서 열린 어느 강연에서는 “민간교류와 이산상봉이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국 교류에도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긍정적 전망은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을 전후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지 않았고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 원칙을 재확인했음에도 이에 북측이 신중하게 대응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당국회담이 성사되면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한 근본적 해결 방안 모색, 경원선 복원, 그리고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 문제 등을 의제로 제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또한 남측 정부는 금강산 관광의 재개와 5.24 대북제재의 해제 문제를 포함해 북측이 원하는 의제를 모두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홍 장관은 21일 “5.24 조치를 해제하기 위해선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일단 북측과의 당국회담이 성사되면 그 자리에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북한의 사과를 포함해 “책임있는 조치”를 받아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남측 정부의 이 같은 입장과는 별도로 북측도 “나름의 계산법”을 갖고 남북관계에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국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북한은 남북 당국회담의 개최 여부를 남북관계뿐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판단하려 하는 것 같다”면서 “북중관계의 진전과 이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개선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지를 봐가면서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도 속도 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당국회담이 성사되면 “상호 관심사를 모두 논의할 수 있다”는 남측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북측은 북한이 직면한 대외관계의 흐름 속에서 당국회담 개최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