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우는 대북 정책을 요즘엔 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부르지요. 이 정책의 이론적 배경을 100여년전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찾아보자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 간에 신뢰를 형성해 관계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줄곧 이 정책을 홍보했지만, 여전히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따라다니곤 합니다. 정책의 뼈대는 있는데, 그 내용, 즉 살이 아직 붙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그 뼈대에 살을 붙이기 위해 100년 전 항일 운동가의 이론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통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의 실현 방안”. 최근 발간된 북한연구학회보 제17권에 게재된 논문의 제목입니다.
논문의 저자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의 이승열 박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100년 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수평적 연대”와 “초국가적 통합”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평화 의회’의 설치, ‘경제공동체’ 창설, ‘공동 군대’의 창설, 그리고 ‘공용 화폐’와 ‘공용 은행’의 개설 방안 등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통합과정에서 그대로 실천되었다”는 게 이승열 박사가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제시한 구상이 의도치 않게 유럽의 통합 과정에서 구현됐다면, 이 구상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에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이 박사의 주장입니다.
이승열 박사: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100년전 한중일 세력 균형의 중요성, 평화 구조로서 동북아 다자간 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개념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동양평화론'의 이론적 배경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승열 박사는 또 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분쟁 지역이던 중국의 ‘여순’을 동양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자는 안중근 의사의 제안이 우연하게도 유럽 민족주의 전쟁의 발원지인 알자스-로렌 지역에서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본부 설치로 구현되었듯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설치 제안도 ‘동양평화론’의 시각에서 볼 때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100여년전 안중근 의사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활용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입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한 혐의로 여순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어, 이듬해 3월 26일 교수형으로 순국한 한국의 사상가이자 군인입니다.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본문의 서론인 ‘전감’ 부분까지만 기록되어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1910년 2월 14일 히라이시 우지히토 여순 고등법원장과 가진 면담 기록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