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요즘 북한의 핵 보유를 공개적으로 자주 언급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립니다. 그렇지만 미국 행정부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이 현재 시점에서 북한 핵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클린턴 장관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발언을 먼저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클린턴 장관은 9일 켄터키 주의 루이빌대학교에서 핵 비확산을 주제로 강연하는 가운데 북한이 핵무기 1-6개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11일에는 ABC방송에 출연해 북한을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 이란을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는 국가로 각각 분류했습니다. 또 클린턴 장관은 NBC 방송과 CBS방송에 나와서도 비슷한 취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8개국 (G8)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실질적으로 간주하는 미국 행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미국 언론은 북한 핵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기자: 미국 언론은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보유한 국가로 간주합니다. 11일자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는 제1차 핵안보 정상회의와 관련한 기사에서 이 회의에 전 세계 9개 핵 보유국 중 8개국만 참석한다고 기술했습니다. 포스트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사는 사회주의 국가의 언론사와 달리 공식적인 견해가 아닌 독자적인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9개 핵 보유국이라고 쓴 표현에 무게가 실리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핵을 보유한 국가와 관련한 WP 기술은 북한의 핵을 보는 미국 언론의 단적인 견해로 봐도 무방합니다.
앵커: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에 대하여 갖는 공식적인 견해는 무엇입니까?
기자: 북한을 핵을 보유한 국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견해입니다.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서 결코 인정할 수가 없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합동군사령부(USJFCOM)는 2008년 12월에 낸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명기했다가 한국 정부의 이의 제기를 받고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해명한 적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정치적으로 핵 보유국의 지위는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왜 클린턴 장관은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자주 하고 있나요?
기자: 정책 시행의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클린턴 장관은 9일 강연을 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1-6개 정도 보유했다고 본다"면서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차단하려고 국제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여기서 클린턴 장관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행정부는 두 번이나 핵실험을 한 북한이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전제 아래 각종 정책을 수립한다고 관측됩니다. 반면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당분간 견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미국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실제적으로 북한 핵을 사실로 간주함으로써 이와 관련한 정책 시행에서 유연성을 가지려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앵커: 미국이 현재 북한에 대해 펼치는 핵 정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기자: 미국 행정부가 6일 발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이를 잘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핵 비보유국에 대해 핵 공격을 포기한다는 획기적인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비보유국이 생화학 무기로 미국이나 동맹국을 공격해도 미국이 핵 공격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을 붙여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을 탈퇴했거나 핵 비확산 의무를 지키지 않는 국가를 예외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 나라는 북한과 이란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동원하지 않고 재래식 무기나 생화학 무기로 미국이나 동맹국에 공격을 가할 경우라도 미국은 NPT를 탈퇴한 북한을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핵무기로 공격하겠다는 정책을 새 NPR에서 표명했습니다.
앵커: 북한은 미국의 핵태세 검토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기자: 물론 이 보고서에 반발했지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9일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억제력으로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겠다"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할 능력이 충분하며 미국이 그렇게 할 이유와 명분을 준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북한이 미국을 결코 신뢰할 수가 없어 주장하는, '핵을 통한 자위권 행사'라는 논리에서 나왔습니다.
앵커: 북한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핵과 관련해 취한 일련의 조치를 보면 이런 주장의 근거가 점차 약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합니다. 이를 위해서 6일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내고 이보다 앞서서 러시아와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또 12-13일에는 전 세계 47개국 지도자가 모인 가운데 핵안보 정상회의를 열었습니다. 러시아와는 별도로 무기급 플루토늄을 34톤씩 감축하는 협정에도 서명했습니다. 이런 조치의 기저에는 핵 무기 역할을 줄여서 핵 군축을 추진하는 한편 핵 물질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깔려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향으로 같이 가겠다는 생각이 전 세계의 대세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반대로 가겠다는 방향이 북한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입장은 그 근거를 잃어갑니다.
앵커: 북한은 독특한 독재 체제의 성격상 아무런 예고 없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미국은 그럴 경우를 대비해 북한에 있는 핵무기를 처리할 방안을 마련했습니까?
기자: 그런 징후가 나왔습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4월 1일 키스 스탤더 미국 해병대 태평양 사령관의 말을 인용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의 주임무는 북한이 붕괴했을 때 핵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월터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은 3월 11일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합동 부대를 운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앵커:네,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 핵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