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시료 채취" 대신 北 자극 않는 용어 고려를

검증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시료 채취’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시료 채취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해 절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미국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습니다.

변창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싱가포르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상 부상과 만나 검증 문제에 관한 협의를 끝낸 뒤 "북측이 (검증 방안과 관련해) 평양에서 합의한 것을 재확인했다"고 5일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힐 차관보가 언급한 평양 합의의 핵심은 영변 핵시설에서 하는 시료 채취입니다. 그러나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 간에 구두로 합의된 시료 채취와 관련해 북한은 이를 문서화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 측이 평양 합의를 통해 시료 채취에 합의하고도 정작 문서화하는 데 거부감을 보이면서 검증 협상도 몇 달 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시료 채취'(sampling)란 용어 대신 미국이 다른 표현을 찾을 경우 타협안이 마련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민간연구기관인 과학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은 지난해 미국 측에 건네준 시료에서 고농축 우라늄과 관련한 입자가 검출되고, 관련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 내 강경파에게 공격을 받은 뒤 시료 채취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은 시료 채취가 외교, 정치적으로 손상을 준다고 보고 있는 만큼 미국은 다른 표현을 강구해봄직 하다"고 말했습니다.


David Albright: For North Korea, the word 'sampling' is very politically charged. you can call it forensic, you can call it taking... (북한에게 시료 채취란 말은 정치적인 함의가 무척 강하다. 이 말 대신 ‘정밀 분석’(forensic)이라고 불러도 좋고, ‘흑연 파편을 취한다’(taking pieces of graphites)는 말도 괜챦다. 다른 말을 찾으면 북한도 분명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10월 미북 평양 합의에 관해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올브라이트 소장은 “평양 합의는 분명 지난 8월22일 북한에 전달된 검증의정서 초안을 참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초안에는 핵폐기물과 핵물질의 수거와 흑연 감속로에서 하는 시료 채취를 포함하는 과학적인 절차(scientific procedures)가 담겨 있다”고 밝혀 북한이 ‘시료 채취’에 동의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평양 합의에 대해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도 브리핑을 받은 뒤 관련 합의를 “이해하고 존중한다”(understand and support)는 입장을 표시했다”고 올브라이트 소장은 밝혔습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게리 새모어 부회장도 미국이 굳이 ‘시료 채취’ 란 표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Gary Samore: I think the US can use the different word to describe the substance, but I think they want to have that in writing... (미국은 시료 채취란 본질을 기술하기 위해 다른 말을 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은 문서화를 바라고 있다. 문서화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꼭 공개 문서일 필요는 없으며 비공개 각서(confidential minute)로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이 ‘시료 채취’를 다른 말로 바꾼다고 해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새모어 부회장은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새모어 부회장은 “북한은 시료 채취를 허용할 경우 시료 채취란 선례를 남긴다는 점 외에도 이미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이 부정확한 것으로 탄로나거나 혹은 시료 채취가 시작되는 순간 몇 달 아니 몇 년간 더 많은 의혹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미국이 시료 채취를 포함하지 않는 검증 절차에 동의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새모어 부회장은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