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개혁 조건 단 외국원조 안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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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자회를 앞둔 북한이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주체적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대북소식통들은 3대째 권력세습을 앞둔 북한이 까다로운 조건을 다는 외국의 경제원조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서울에서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경제를 극구 칭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당대표자회를 통해 경제개방을 표명할 조짐이라고 해석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자처한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지난 18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주체화는 우리 경제 부흥과 비약의 기치”라는 제목의 논설을 실으면서 폐쇄적인 북한식 ‘주체경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서 이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노동신문의 이 같은 논설은 중국방문 당시 개혁개방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과 모순된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고위급 북한소식통들은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북한이 조건이 따라붙는 외국의 경제원조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최근 북한내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노동신문의 논설에 대해 “중국을 비롯한 외국 지도자들의 잘못된 대북 인식과 경제적 차별대우에 대한 항거의 표시”라면서 “더욱이 개혁개방은 김정일의 후계구도 성패여부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북한)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과정을 언급하면서 중국 지도부가 조선(북한)은 ‘조·중 호상방위조약(북중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항시적인 핵보호를 받기 때문에 조선이 핵을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경제 지원을 미끼로 개혁개방을 유도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정일을 수행한 북한 지도부는 중국 지도부의 이러한 논리에 대해 자신들의 핵보유는 미국의 전쟁위협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라고 맞서며 조건을 다는 경제원조는 국제적 차별행위라고 거센 설전을 벌였다는 것이 그의 전언입니다.

김정일 자신도 후진타오(호금도)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호금도 주석과 현 중국지도부를 굳게 믿고 있다”며 “하지만 호금도주석의 다음 세대들도 영원히 우리를 핵으로 보호해 줄 것이라는 담보는 없지 않느냐?”고 핵포기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호금도 주석에게 중국이 중재하는 6자회담에 큰 기대를 표한다고 말해 긴장으로 치닫는 한반도 정세가 완화되기를 희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북한 고위급 소식통은 “지난 9월 초에 열린 당 군사위원회에서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피격사건)과 천안호 사건까지 남북 간 정세가 전면 분석됐다”며 “결과적으로 많은 실책이 있었다는 것이 인정되면서 일부 대남부서 간부들을 처벌하는 문제까지 논의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 군사위원회에서 “개혁개방을 조건으로 한 그 어떤 외국의 경제원조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은 확고했다”며 “경제원조를 미끼로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려는 중국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높이고 남조선(남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결론 을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경제체제(점진적 개혁경제)만이 살길이고 앞으로 새 경제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누구도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 실정” 이라며 “다만 지금은 새 개혁체제를 도입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는 뜻”이라고 말해 묘한 회의 분위기를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현 시점에서 새로운 경제체제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장 돈도 급하지만 후계자 문제가 모든 것에 우선이라는 인식 때문이며 개혁개방은 김정은의 권력 장악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이후에나 검토될 것 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소식통들은 지금 당장 개혁개방을 선택하는 것은 김정일이 권력을 포기하고 후계자인 김정은도 버리겠다는 행위나 다름없다며 주민들의 소요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개혁정책은 현시점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남한과 외국의 경제지원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 시급한 노동당으로선 주체적 자립경제 노선을 강조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