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을 유지하는 비결은 공포 사회를 만든 데에 있습니다. 김정일 정권은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고 보안 부서를 통해서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는 한편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함으로써 공포심를 유발하고 이런 공포의 구조화를 통해서 인민의 정치적 반대와 항거를 좌절시켜 왔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선 공포 사회와 공포의 구조화라는 게 무슨 내용인지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공포 사회와 공포의 구조화는 김정일 정권이 인민을 지배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북조선 정권은 무자비한 폭력과 감금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인민이 정치적 반대 행위를 일체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회가 공포 사회입니다. 그리고 북조선 정권은 이런 공포를 인민에게 유발하고 확산시킴으로써 인민이 스스로 알아서 순종하고 반체제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습니다. 인민은 체제에 대한 항거는 꿈도 꾸지 못하고 절대 복종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이것이 공포의 구조화입니다. 이 같은 공포 사회와 공포의 구조화는 철저한 상호 감시와 상승(相乘)작용을 일으켜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가 힘듭니다.
앵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최근 나온 적이 있습니까?
기자: 남조선 세종연구소의 오경섭 연구위원이 4월 27일 서울에서 이에 관해서 언급했습니다. 오 위원은 '한반도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 나와서 "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어서 일반 주민은 물론 지배 엘리트에게도 공포를 확산시켜 독재자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억제한다"고 말하고 "본질적으로 북조선은 전체주의적인 통제 체제에 바탕한 공포 사회"라고 진단했습니다. 오 위원은 김정일 정권이 북한에서 아주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공포의 구조화에 힘입어 체제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95-1997년의 '고난의 행군' 때 무려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현재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국가가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사태도 북조선의 공포 사회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공포의 구조화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면 정권이 이미 여러 차례 붕괴했습니다.
앵커: 일반 인민은 공포 사회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앞에서 나왔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먼저 연상합니다. 공포의 정치범 수용소는 그 실태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기자: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1월 20일 발표한 실태에 그 열악한 상황이 잘 나와있습니다. 북조선에는 현재 정치범 수용소가 6곳 있으며 정치범 약 20만 명이 그곳에 갇혀서 고문, 강제 노동, 구타 등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부기관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권위는 북한인권정보센터에 의뢰해 수용소를 체험한 탈북자와 강제로 송환됐던 탈북자를 심층적으로 면접한 뒤 실태를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범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용소 간부의 묵인 아래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성희롱, 성폭행, 강제 낙태가 빈번했습니다. 인권위는 북조선의 정치범 수용소에 '인권 침해의 백화점'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특히 함남 요덕 수용소와 평남 북창 수용소 외에는 살아서 나올 수가 없는 곳입니다. 지옥과 같은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북한 인민에게는 공포입니다.
앵커: 탈북자들이 공포 사회의 대명사인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요즘 증언한 적이 있나요?
기자: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각종 구금 시설에 있었던 탈북자들이 4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나와 실태 증언을 했습니다. 김광일 씨는2000년부터 2002년까지 요덕 수용소에 있는 동안 심한 노동 때문에 250명 중 80명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개천여자교화소, 온성군 노동단련대를 경험한 여성 신 아무개 씨는 보위부원이 임신한 여성을 발로 차 이 여성이 빈 배로 돌아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아무도 도울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함흥의 9호 교화소를 경험한 여성 이 아무개 씨는 사람들이 뼈가 나와 보기에 흉측할 정도였고 나무를 하다 도망치려던 두 명이 구둣발에 밟혀서 결국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도 2월 22일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행사에 여성 김 아무개 씨가 나와 정치범 수용소의 보안원들이 바로 출산한 자신의 아기를 그 자리에서 죽인 이야기를 증언했습니다.
앵커: 북한이 공포 사회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간접적인 사례가 있습니까?
기자: 작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으로 돌아간 주민 7명의 사례입니다. 이들은 서해 덕적도 서방 27킬로미터 해상을 표류하다 구조된 사람들입니다. 얼굴과 손과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고 일부는 잘라내야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나흘 동안 남한 측의 수술 제의나 식사와 의류 제공을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그럴 경우 북한에 돌아가서 당할 문초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판문점에서 북측의 관계자를 만나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감격했습니다. 남조선 사람의 눈으로 본 이런 가엾은 사례는 북한이 공포 사회라는 점을 단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이 남한 실상에 관해 엄청나게 왜곡된 교육을 받은 점도 보여주었습니다.
앵커: 북한의 공포 사회와 관련해 당연히 떠오르는 사항은 인권 탄압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기자: 중도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전임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적극적입니다. 인권위에는 북한 인권과 관련한 업무를 전담하는 '북한인권팀'이 최근 신설됐습니다. 이는 인권위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전임 정부의 인권위는 대북 유화책으로 인권 침해에 침묵해 왔습니다. 북한의 인권 탄압이 최악의 최악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이는 만시지탄(晩時之歎)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서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정작 한국 국회를 아직도 통과하지 못한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앵커: 북조선의 공포 사회와 공포의 구조화가 마냥 간다고만 전망할 수도 없지 않나요?
기자: 탈북자와 외부의 견해가 엇갈립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여러 가지 정황상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일은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북조선이 그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공포 사회를 경험한 탈북자들은 견해를 달리합니다.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는 공포 사회의 뿌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어 내부 분열이나 급변 사태는 기대할 수 없다고 전망합니다. 봉기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포가 만연(蔓延)했다는 뜻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이 저항 세력의 싹을 자르면서 일인독재 체제를 유지해 가는 비결인 공포 사회와 공포의 구조화에 관해서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