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문단의 서울 방문 Q/A]

김대중 전 남한 대통령의 국장에 앞서 남한을 방문한 북한 조문단은 일정을 조문단으로 시작해 특사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나타내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고 이 자리에서 남북 관계의 개선에 관한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허형석 기자,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비롯한 실세 조문단이 남한을 방문한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북한이 김대중 전 남한 대통령의 국장을 맞아 파견한 조문단은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역할까지 하고 돌아갔습니다. 조문단은 처음엔 남한 당국과 접촉을 하지 않은 채 도착한 즉시 국회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한 데 이어 김대중 도서관으로 가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습니다. 이들은 다음날인 22일부터 남한 당국에 이 대통령을 면담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고 결국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조문단은 이 대통령을 약 30분 면담하고 남북 관계에 관한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면 북한 조문단의 성격이 어떻게 특사로 바뀔 수 있었습니까?

허형석:

이들이 남한 당국에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남한 당국은 국장과 관련해 이들이 자신들을 배제한 채 김대중 전 대통령 측과 접촉해 이들을 만날 의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문 다음날인 22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한 측 인사들에게 대통령 면담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청와대 측도 이 대통령이 23일 오전 북한 조문단을 접견하기로 22일 밤 늦게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들이 ‘통민(通民) 조문단’에서 ‘통관(通官) 특사’로 일정을 마무리했다고 논평했습니다.


앵커:

북한 조문단이 남한 측 인사들에게 이 대통령 면담을 끈질기게 요청하고 청와대도 어렵게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배경은 무엇으로 볼 수 있나요?


허형석:

북한 조문단은 김 위원장의 훈령을 받고 구두 메시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실세로 구성된 조문단이 온다고 할 때 이들이 조문만 하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상대로 이들은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갖고 와 이를 이 대통령 앞에서 낭독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줄기차게 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청와대가 이를 어렵게 수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처음엔 남한 당국을 배제했기 때문에 이들의 면담에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를 잘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문단이 줄기차게 이를 요청하는 바람에 접견을 하지 않기보다는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앵커:

이들이 남한 당국과 인사에게 대통령을 면담하고 싶다면서 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허형석:

북한 조문단은 남한 통일부의 홍양호 차관에게 “다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라고 말해 면담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또 다른 남한 측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시대가 달라졌다. 냉전 잔재는 가셔야 한다. 그러려면 지도자의 결심이 중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특히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나는 모든 사람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며 “대화에 장애물이 많이 나타나겠지만 석 자 얼음이 하루아침에 다 녹을 수야 있겠는가”라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모두 이들이 이 대통령을 면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앵커:

북한 조문단의 이 대통령 면담이 국제정치적 시각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허형석:

대통령 면담은 북한이 최근 펼치는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최근 3남 김정운 씨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과 관련해 내부 체제를 결속하기 위해 제2차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협에 따른 이득보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맞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초청하고 그동안 억류했던 현대아산의 유성진 씨를 풀어주는 한편 휴전선 통행과 북한 체류에 관해 남한 측 관계자들에게 부과했던 제한을 해제했습니다. 북한은 경제 제재를 모면하고 필요한 달러를 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남한에 유화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남한과 적대적인 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들의 대통령 면담은 평화공세의 일환이라는 성격을 지녔다고도 분석됩니다.

앵커:

북한 조문단의 방문이 이처럼 복잡한 성격을 지녔다고도 보이는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허형석:

한국 정부는 조문단의 면담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문단이 남한에 올 때 김 전 대통령 측과 접촉하고 일단 남한 당국을 배제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한 당국은 이것을 ‘통민봉관(通民封官)’이라고 봅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이들은 ‘사설(私設) 조문단’이라는 말이 나온 점을 보면 남한 당국의 견해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남북 당국 간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해 보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이 일단 있다고는 판단합니다. 앞으로 김 위원장이 조문단에게 이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받고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남북 관계가 달려있다는 입장입니다.

앵커:

북한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사실은 무슨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나요?

허형석:

다수 대북 관측통은 북한 조문단이 이 대통령을 예방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문제로 삼으며 취임부터 지금까지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문단의 방문은 북한이 내부의 체제를 결속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대남 관계를 개선하고 달러가 필요해 남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펼 필요가 있어 이루어진 점은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이 대통령 면담은 남북 간 대화를 정상화하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허형석 기자와 함께 김대중 전 남한 대통령의 국장에 왔다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고 돌아간 북한 조문단의 이모저모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