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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생들이 교과서 없는 개학을 맞을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며칠 전 전해 드렸는 데요, 북한 당국이 지난 주 러시아의 한 대학에 각종 도서와 기록물을 대거 기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김일성 전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아 북한 관련 책과 잡지, 영상물 등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극동연방대학에 기증했다고 대학 당국이 최근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습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은 지난 22일 이 대학 도서관에서 북한 외교관 일행과 대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기증식이 열렸다면서 이같이 전했습니다.
대학 측은 ‘도서-최고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상세히 전하면서, 주체사상에 관한 도서와 김일성, 김정일의 회고록, 그리고 북한에서 발간된 잡지와 안내서, 북한 역사에 관한 영화와 영상물 등을 기증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극동연방대학 측은 북한이 기증한 자료를 대학 도서관 안에 별도로 전시 공간을 만들어 비치해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조선중앙통신도 29일 김일성, 김정일의 노작과 북한을 소개하는 도서를 러시아 대학에 기증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김 전 주석의 100회 생일을 맞아 러시아 대학에 도서를 대량으로 기증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 학생들은 다음 주로 다가온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교과서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최근 함경북도에 살고 있는 가족과 연락했다는 한 탈북자는 아직 교과서를 구하지 못한 학생이 많아 책 없이 수업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북한의 평양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7년 탈북한 김자향(가명) 씨는 당시에도 북한 당국이 종이 사정이 나쁘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자향] 한 학급이 만약 40명이라면 (교과서가) 한 20권 정도 나옵니다. 절반도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두 명이 한 권씩 보라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윗 학년 학생들이 쓰던 걸 내리 물려서 교과서를 보는 경우가 많구요, 어떤 과목은 전체가 한 권도 안 나오고 교수용만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낡은 교과서도 못 받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너무 한심하죠.
그는 김 전 주석의 100회 생일을 기념한다며 더 잘 사는 이웃 나라엔 생색내기 차원에서 책을 기증하면서 정작 북한 학생들은 교과서 없이 개학을 맞도록 내버려 두는 북한의 현실에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김자향] 뭐, 나라의 권위를 세우고 또 홍보 차원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나라의 미래가 학생들인 데 학생들에게 교과서는 우선 출판해 주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미래가 한심한 데 뭐 나라 홍보 차원이라 해서 그런 데 더 중요시하면 아이들은 뭐가 되겠습니까?
김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 책과 교과서가 넘쳐나는 걸 보고 처음에는 북한에 두고 온 학생들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