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핵-비핵국 중간지위 허용을”

미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되,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의 중간 지위를 허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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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화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휴 거스터슨 교수는 미국 핵과학자들의 잡지인 '핵과학자협회지'의 최근호에서 "북한이 핵무장을 하느냐, 비핵국가가 되느냐 사이엔 중간 지점이란 없다"고 최근 밝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주장이 한마디로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핵과학자협회지'는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핵과학교육재단'에서 발행하는 전문지로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포함해 저명한 핵과학자들의 북한과 관련한 논문을 자주 싣고 있습니다.

2006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가르치며 핵과학자와 비핵운동가를 연구해온 거스터슨 교수는 이 논문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른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단기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의 중간 지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창의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 목표가 여전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지만,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방안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거스터슨 교수는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한 현 상황을 타개할 '창의적' 방안으로 크게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북한이 현재 가진 소량의 핵무기를 계속 소유하게 하되, 엄격한 국제적 안전조치(strictest international safeguards) 아래 추가 무기를 만들기 위한 플라토늄이나 우라늄의 생산 능력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소량의 기본적인 핵무기를 비축하게 되지만 이 단계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동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두 번째 방안은 첫 번째 방안과는 달리 북한이 현재 가진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되, 향후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플루토늄은 비축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세 번째 방안은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하도록 하되 핵무기를 실은 미사일을 해외의 목표지점을 대상으로 시험 발사하지 않도록 합의하는 겁니다. 마지막 방안은 북한 핵무기의 주요 부품을 제 3자의 안전조치 아래 관리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최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했던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2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거스터슨 교수의 주장은 핵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체제, 미국과 동맹국들과의 관계, 미국의 국내 정치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그의 주장이 미국 행정부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현재 미국 동부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아시아태평양문제 연구소에서 한국학 부국장으로 있는 스트라우브 씨는 거스터슨 교수의 말처럼 미국 관리들이 북한의 의도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일뿐 아니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핵을 제조하는 기술을 수출해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항은 미국 정부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사업을 완전히 (entirely)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란 점이라고 스트라우브 씨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와 관련한 기술과 물질을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스트라우브 씨는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 핵의 완전 폐기' 혹은 '핵확산 봉쇄' 가운데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 가운데, 미국의 유력지 뉴욕 타임스는 이달 초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벽한 폐기보다는 핵 기술의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방송 매체인 MSNBC와 한 회견에서 "북한이 더 이상 핵을 개발하지 않고,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언급해, "더 이상" 핵개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기왕의 핵개발은 용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