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박성우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박 기자,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서 한국 정부가 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요? 이걸 쉽게 설명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나요?
박성우:
네. 핵 과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비유인데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나온 폐연료봉을 ‘연탄재’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연탄이 다 타질 안잖아요. 연탄의 검은 부분이 남곤 하는데. 지금 한국에선 이 연탄재를 그냥 쌓아두기만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 연탄재에서 검은 부분을 모아서 활용을 하자는 거구요. 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서 연탄재의 규모를 좀 줄여보자는 겁니다. 연탄재의 규모를 줄이자는 게 더 큰 이유로 봐도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지금은 연탄재를 그냥 모아두고 있는데, 이게 너무 많아서 처치가 곤란하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면 ‘사용후 핵연료’가 나오는데, 이걸 지금 한국은 그냥 저장만 해 두고 있거든요. 재처리를 할 수 없도록 해 놔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국 20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가 매년 700톤입니다. 지금 한국에 있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만 갖고는 2016년이면 포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걸 재활용하고, 또 새로운 처리 방식을 도입해서 앞으로는 폐기물의 규모를 줄여보겠다 게 한국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계획입니다.
진행자:
설명이 좀 필요할 듯한데요. 그럼 한국이 사용하겠다는 기술이 뭔가요?
박성우:
네, 원전에서 사용한 폐연료봉은 보통 ‘습식 재처리’를 합니다. 폐연료봉을 질산으로 녹여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건데요.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습식 재처리 기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지금 한국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건 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 그러니까 ‘건식 처리’ 기술입니다. 이 방법은 섭씨 550도로 폐연료봉을 태운 다음에 전기분해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우라늄이 나오고요. 그리고 동시에 플루토늄과 넵트늄 같은 게 한데 섞인 금속이 추출됩니다. 다시 말해서, 플루토늄만 추출되는 게 아니죠. 플루토늄이 섞여 있는 금속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걸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데로, 건식처리를 통해서 우라늄은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재활용할 수는 있는 거지요.
건식 처리 기술을 사용하면 사용후 핵연료의 95%가량을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폐기물이 5%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거지요.
진행자:
건식처리를 하면 폐기물의 규모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군요.
박성우:
네, 그렇습니다. 일단, 폐연료봉의 부피를 2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방사성의 독성도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의 규모를 지금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진행자:
1974년 당시에 한국과 미국이 원자력 협정을 맺었을 때, 그때 한국이 재처리를 못하도록 한 이유는 뭔가요?
박성우:
네, 당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농축과 재처리를 통해서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한국에 핵기술을 이전해 준 거지요. 국방연구원의 김태우 박사의 말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이분은 90년대 초반부터 평화적 핵주권 문제를 연구한 분입니다.
김태우:
미국으로서는 핵무기 확산을 방지해야 하는, 소위 ‘비확산 체제’를 주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이든 기본적으로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고, 또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수 공정인 농축과 재처리를 확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한국의 경우, 70년대 재처리를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고. 이것이 미국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고요. 이런 저런 이유가 합쳐진 상태에서 원자력 협정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농축, 재처리에 대한 제약을 가하는 내용을 포함했죠. 그러나 한미 원자력 협정 그 자체만이 농축, 재처리를 금지하는 건 아닙니다. 아까 이야기 했다시피, 우리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농축, 재처리 포기와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에 오히려 더 명확하게 농축, 재처리 포기가 명시돼 있죠.
박성우:
1974년 한미원자력협정은 한국이 ‘사용후 핵연료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 미국의 동의를 받는다’고 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91년에 한 발 더 나아가서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갖추지 않겠다’고 밝혔고, 1992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에 이를 반영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현재 핵연료를 외국에서 사와야 하고, 또 재처리 시설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그렇군요.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이번 사안이 불거지니까 ‘핵주권론’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왜 그런 겁니까?
박성우:
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니까 한국 내 일각에서 ‘북한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핵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핵주권’이라는 개념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조건이 붙으니까 한국도 마치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리는데요. 이건 ‘핵주권’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이미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 그러니까 NPT라는 걸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 핵보유국 말고는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요. 이런 상황을 이해하신 상태에서 김태우 박사의 말을 다시 들어 보시겠습니다.
김태우:
핵 주권론에는 평화적 핵주권론과 군사적 핵주권론,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한다고 봐야겠는데요. 여기서 군사적 핵주권론이라는 것은 핵무기를 만들고 배치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핵무기까지도 만들어서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다 가지는 경우를 군사적 핵주권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은 NPT상에서 5개 회원국을 뺀 나머지 NPT 회원국들에게는 불법입니다. 핵무기를 못 가지게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군사적 핵주권론은 일반 NPT 회원국에게는 불법적인 영역이라고 보시면 되고. 평화적 핵주권론은 원자력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핵무기 부분을 배제한 겁니다. 핵무기를 배제한 나머지 부분만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게 평화적 핵주권론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핵무기를 제외한 여타 분야에 있어서 평화적 핵 이용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권리, 이게 평화적 핵 주권론이죠.
박성우:
그럼 한국이 추진하는 게 평화적 핵이용을 하겠다는 주권론으로 봐야겠군요?
김태우:
당연한 이야기죠. 1991년 초반부터 제가 평화적 핵주권론을 이야기 할 때도 당연히 핵무기가 배제된 NPT상의 합법적 영역인 평화적 핵주권론을 이야기한 것인데. 그러나 이게 한국사회 일반인들에게는 ‘핵주권’이라는 단어 때문에 평화적, 군사적 구분이 잘 안 됐고, 또 일부 언론에서는 의도적으로 혼용했어요. 기삿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핵주권은 핵무장을 하자는 것으로 몰고 간 측면도 있어요.
진행자:
그렇군요. 그럼 한국이 평화적 핵주권을 갖기 위해서 앞으로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은 뭐라고 하나요?
박성우:
네,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제사회가 비확산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핵 재활용’을 하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데로 ‘군사적 핵주권’을 가지려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핵무기 보유를 위한 재처리를 해 보려는 사전 포석이 아니냐’ 이런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미 간 신뢰를 두텁게 하는 게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고 김태우 박사는 지적합니다. 들어보시죠.
김태우:
한국 원자력 산업에 있어서 농축과 재처리는 대단히 긴요하고 시급한 사안이죠. 재처리를 해야지만 막대한 사용후 연료를 환경적으로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고. 또 농축을 해야지만 핵연료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국산화되기 때문에 대단히 시급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이를 포기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으로 봐야 하고요. 그 이후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농축, 재처리마저도 확산시키지 않겠다, 이것을 불법화시키겠다는 노력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한국으로서는 새롭게 등장한 핵 국제정치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고요. 또 한 가지는 한국과 미국 간의 신뢰가 충분히 구축됐느냐는 문제가 있어요. 한국에서는 ‘우리가 주권국인데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왜 미국에 물어봐야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철없는 이야기고요. 미국이 모든 비확산 장치를 주도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미 간에는 동맹 차원에서도 걸려있는 현안이 굉장히 많아요. 핵우산 강화나 전작권(전시작전권) 분리에 대한 대비라든지. 그러니까 한미 간 동맹을 위한 차원에서도 그렇고, 미국이 실제로 국제 비확산 장치들을 관장하는 나라라는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미국과의 사전 협의와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한미 간 신뢰가 충분히 축적돼 있는가, 이걸 우리가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요. 지난 전임 두 정권 동안 한미 관계가 많이 약화된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진전시킬 만큼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가, 지금 회복했는가를 먼저 한 번 확인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박성우:
좀 더 설명을 드리면, 평화적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국제 사회의 규약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좀 독특한 경우입니다. 한국은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미국과의 별도 협정과 선언을 통해 스스로 제한한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국회에서도 원자력 소위원회를 만들어서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난 2일 이 같은 한국의 의도를 “매우 조심스런 내용”이라고 밝힌 것처럼, 앞으로 한국의 의사가 개정 작업에 반영될 수 있을지는 좀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박성우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성우: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