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영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오는 9월 런던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인 탈북 대학생 오세혁 씨가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인 ‘한겨레 중고등학교’에서 지난 14일 자신의 후배들에게 특강을 했습니다. 이날 KBS 한민족방송이 주최한 공개방송에 출연한 오세혁 씨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라”고 후배들에게 충고합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겨레 중고등학교’. 탈북 청소년을 위한 이 학교에 이날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KBS 한민족방송이 학교 대강당에서 공개방송을 가진 겁니다.
현장음:
연중기획 ‘찾아가는 경제교실’ 성공 특강!!!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학부모 등 250여 명이 대강당을 꽉 채웠습니다.
현장음:
초대가수 노래
초대 가수의 노래가 어우러진 이날 공개방송은 진로와 직업에 관한 특강으로 이어집니다.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주인공은 오세혁 씨입니다.
행사 진행자1
: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를 올 2월에 마치고 영국 정부 장학생으로 올여름 영국 석사 유학길에 오르는 오세혁 씨를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행자 진행자2
: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오세혁
: 안녕하세요.
행사 진행자2
: 네, 반갑습니다. 학생들의 박수가 유난히 크게 쏟아집니다.
오세혁
: 네, 저도 많이 떨립니다.
행사 진행자2
: 남한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세혁
: 내년이 되면 만 10년이 됩니다.
오세혁 씨는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2년 반을 산 다음 북경에 있는 독일 대사관을 통해 남한으로 왔습니다.
가족 없이 혼자 남한에 온 오 씨는 목욕탕에서 때밀이일까지 하면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공부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얻은 자그마한 선물이 있습니다. 지난달 오 씨는 탈북 대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정부가 주는 ‘쉐브닝 장학금’을 받은 겁니다.
오는 9월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인 오 씨는 자신이 거둔 소기의 성과를 ‘성공’이라고 말하는 건 쑥스럽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행사 진행자1
: 어떻게 장학금을 받고 유학길에 오르게 됐는지, 그 성공 비결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행사 진행자2
: 우와, 성공 비결입니다, 여러분!
오세혁
: (한숨) 그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고요. 그냥 제가 여러분들보다 조금 먼저 온 선배로서 제가 경험한 걸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세혁 씨가 처음 던진 말은 ‘외로움’입니다.
오세혁
: 일단은 여러분들이, 모든 분들이 외로움을 제일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학생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저도 혼자 오다 보니까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아마도 오히려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외로움을 많이 못 느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겪은 외로움. 자신은 이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방법도 소개합니다.
오세혁: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목표를 정하는 겁니다. 제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정하는 게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목표를 정할 때는 실현 가능한 것부터, 확실한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오세혁
: 만약 이 순간에 ‘나도 나중에 영국에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내일부터 당장 준비를 하셔서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노력하시면 반드시 결과가 있을 거에요. 저도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잖아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없으니까, 여러분들도 꾸준히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특강을 끝낸 오세혁 씨는 상기된 표정입니다.
기자
: 후배들과 만났는데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잘 전달된 것 같으세요?
오세혁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잘 받아준 것 같고요. 눈을 크게 뜨고 귀담아듣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기자
: 외로움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자신의 강의를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시작했는데요. 왜 그랬습니까?
오세혁
: 아마도 북에서 온 친구들이 이 사회에 처음에는 적응하는 게 힘들다 보니까 동떨어진 감을 느끼면서, 더욱이 혼자 온 친구들은 많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제가 던진 것 같아요.
기자
: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라고 말하셨는데요. 강의를 다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라’ 이 사이에는 많은 말이 생략돼 있는데요. 조금만 더 설명해 주세요.
오세혁
: 사실 외로움은 정신없이 바쁠 땐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바쁘게 일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씩 안정되고 뭔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 외로움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럴 때 너무 긴 시간을 고민하는 데 허비하게 되면 외로움이 찾아오거든요. 너무 깊이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잊는 방법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어떤 목표물을 세우는 거지요. 그래서 아마도 제가 외로움을 목표와 연결시키려 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 와서 ‘외롭다’라고 말하는 탈북 청소년은 의외로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오세혁 씨처럼 가족을 북에 두고 온 사람들은 외로움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둔 오세혁 씨. 그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첫발을 딛는 한겨레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날 공개방송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게 KBS 한민족방송 오순화 프로듀서의 설명입니다.
오순화
: 탈북인들이 지난달로 2만 1천 명이 넘었는데요. 그 가운데 청소년의 비중이 10%에 이른다고 합니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우리 청소년 10명 가운데 거의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여러 가지 문화 차이와 학력의 차이 때문에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결과를 보고, 학생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선배 탈북인을 모시고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들려줌으로써 아이들에게 한국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면 성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롤 모델’은 본보기가 되는 모범적인 사람을 뜻합니다. 이날 공개방송에서 ‘롤 모델’로 제시된 선배 탈북자 오세혁 씨.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후배 학생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지난 3월 한국에 들어온 직후 이 학교의 고등학교 3학년 학급에 배정받은 김 모 양입니다.
김 모 양
: 저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리고 학교에 들어온 지는 넉 달밖에 안 됐어요. 한국사회에 와서 학교에 오니까 자신감이 없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되고, 그리고 앞으로 나의 장래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분간을 못 할 정도로 아주 힘들고 고민이 많아요. 저도 혼자예요. (한국에) 혼자 왔거든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와서 아까 말씀하신 대로 샤워실(목욕탕)에서 때밀이 일도 하고, 힘든 일도 많이 하셨고, 처음에는 많은 고통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이렇게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학교 졸업해서 비록 혼자 몸이지만 그 선배님처럼 한국 사회에서 땀도 많이 흘려보고 열심히 해서 10년 후에는 나도 저 선배님처럼 성공해야겠다는 자신감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오세혁 씨가 후배에게 전해 준 건 자신감이었습니다.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교직원들은 한국 사회에 먼저 진출한 탈북자가 열심히 노력해 만들어내는 작은 성공담이 이곳 학교에서 공부하는 후배 탈북 학생들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날 오세혁 씨의 특강을 들은 학생들에게서 제2, 제3의 오세혁 씨가 나올 수 있길 교직원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겨레 중고등학교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성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