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권력 세습이 올해 들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째 아들인 김정은 씨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작업을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가 거의 어려운 3대 권력 세습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올해 들어서 권력 세습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력한 일간지 뉴욕 타임즈(NYT)도 4월 26일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그러한 정황의 사례가 있습니까?
기자: 북한의 관영 언론매체는 올해 1월 2일, 새해 첫날 새벽의 자연 현상을 소개하면서 세째 아들을 암시하는 새별/금성을 유난히 강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정은 씨는 작년 1월 8일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알려지면서 찬양 가요 '발걸음'에서 '김 대장'으로 불렸지만 생모 고영희 씨가 살아있던 2004년까지는 '새별 장군'으로 지칭됐습니다.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의 이 같은 강조는 올해 후계 구도의 구축에 힘이 실린다고 예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2월 1일 북한 당국은 해외 공관에다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 체계를 철저히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지시문을 보냈습니다. 또 1월 8일자 인민무력부 기관지 '조선인민군'은 4개면 전체를 할애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에 충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이외에도 김 위원장이 권력 세습을 진행한다고 해석되는 사례는 많이 있을 텐데요?
기자: 휴전선을 지키는 민경부대에 대한 홍보를 들 수가 있습니다. 이 작업에서 나오는 구호는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는 대를 이어 장군님을 받들어 모시는 우리의 영도자이다'라고 합니다. 5월3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 당국은 후계자로 알려진 세째 아들의 모습을 우표에도 넣는다고 전해졌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서 대동강변에서 벌어진 '축포야회'/불꽃놀이 행사장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김정은 씨의 생일 잔치가 공식적으로 치러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한국의 MBC 텔레비전은 4월 20일 평양에 거주했던 독일 구호단체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 직원들이 1월 8일 김정은 씨의 생일 잔치에 간다며 2시에 퇴근했다고 전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은 이처럼 권력 세습과 관련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인민은 이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습니까?
기자: 북한 인민은 후계 세습에 불만이 있습니다. 북한은 고질적인 경제난에다가 유엔의 대조선 제재와 남조선 원조의 단절까지 맞아 더욱 어려운 상황에서 작년 말부터는 화폐 개혁의 실패, 장마당 폐쇄, 식량 부족 등의 사태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습니다. 5월 15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곳곳에서 세째 아들에 대해 "피도 안 마른 쬐고만 놈" 또는 "아비보다 더한 놈이 아니냐"는 욕이 나옵니다. 한국 국정원 산하 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남성욱 소장은 6월 1일 김 위원장이 강성대국의 건설 시한으로 제시한 2012년까지는 후계 구도를 확립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전망은 지금은 정황상 북한에서 세습을 논의할 적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북한의 정치 체제를 보면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조선은 수령절대주의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왕조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입니다. 나라 이름에 공화국이란 말이 들어 있지만 북조선을 공화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공화국은 '공화 정치를 하는 나라,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것의 반대 개념은 전제(專制) 국가입니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북조선은 봉건주의와 전제주의 요소가 들어간 사실상의 왕조 국가라고 말해야 합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의 권력 세습은 왕조 국가의 형태와 같습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북조선을 자신들의 왕국으로서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 세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 언론은 '김씨 왕조'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앵커: 김 위원장은 올해 들어 권력 세습을 가속화한다고 보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기자: 김 위원장의 건강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일반 나이로도 이젠 고령에 속하는 데다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언제 유고(有故) 상황을 맞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2008년 여름 뇌졸중을 앓아 몇 달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당뇨와 신부전까지 겹쳐 건강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김 위원장은 뇌졸중을 앓고난 뒤 후계 세습을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 위원장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는 중국 방문에서 드러났습니다. 김 위원장이 왼쪽 발을 끌며 걷는 모습은 이런 상태의 방증입니다. 김 위원장은 왕세자를 거쳤기 때문에 후계자를 내정하거나 결정하면 반드시 권력의 누수가 일어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후계 세습을 서두릅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앵커: 북조선 밖에서는 북조선에서 진행되는 부자 간의 권력 세습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자: 앞서 잠시 설명을 드린 대로 외국 언론은 '김씨 왕조'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에 모든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북조선은 나라 이름에 걸맞지 않게 왕조 국가를 운영하며 사회주의 간판을 내건 독특한 나라입니다.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권력을 세습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쿠바가 형에서 아우에게 권력이 이양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쿠바는 권력 세습을 사실상 했습니다. 국제 사회는 북한을 부자가 이보다 더 확실하게 권력을 세습하는 왕조 국가로 간주합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 세습을 민주주의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먼 시대착오적인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북한의 이 같은 권력 승계를 사회주의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앵커: 뉴욕 타임즈는 5월 27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배경에는 후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보도 내용을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이 신문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알려진 김 위원장의 세째 아들 김정은 씨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고 한국전 이후 최악의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모자란 세째 아들이 자연스럽게 군대와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준전시 상황을 만들었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진단했습니다. 김 위원장 자신도 김일성 주석한테서 권력 승계를 하려고 1968년과1976년 대남 도발을 일으켜 군부의 신뢰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올해 들어 북한 내부에서 조용한 가운데 속도를 내며 진행되는 3대 권력 세습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