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특권층 자녀들이 여전히 한국 드라마에 매혹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북한 사회가 변하면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을까봐 오히려 염려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몇 년 전 난민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김철호(가명)씨는 얼마 전에 북한 친구와 전화하다가 "한국 드라마 '검사프린세스'를 간부자녀들이 돌려본다는 애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 씨는 "나도 '검사프린세스'를 보지 못했는데, 북한 친구가 드라마의 줄거리와 거기에 참가한 배우들의 실명까지 다 알고 있었다"며 북한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는 걸 느꼈다고 10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드라마 '검사프린세스'는 2010년 한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만든 16부작으로, 새로 부임한 여자검사(김소연)가 여러 사건을 맡아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이 드라마에는 한국 연예계 미남배우 박시후가 출연해 젊은 북한 여성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닌다는 한 여대학생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이 드라마를 다 봤는데,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 나타나자, 학급 친구들은 그가 진짜 아파한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이 학생의 아버지가 국가안전보위부에 다니는 고위 간부지만, 그의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본다면서 드라마에서 불우한 가정사가 나올 때는 같이 눈물을 흘리고, 삼각연애를 하는 남자를 볼 때는 분노를 표시하는 등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본 북한 간부들은 정작 북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북한 간부의 자녀는 드라마를 다 본 후에 재미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한국이 저렇게 발전했는데 과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20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등 한국 사회의 발전된 모습을 적지 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 고위층은 남북이 통일됐을 경우 자기들의 직위와 특권을 잃을까봐 더 두려워한다고 김 씨는 덧붙였습니다.
평양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해 사는 또 다른 탈북자도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웬만큼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라면서 이들이 드라마에서 배우는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입는 옷이나 신발, 머리단장, 화장품과 같은 유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 고위층들도 한국의 손전화와 자동차 등 첨단장비를 상당히 부러워 하지만, 통일이 되면 한국 사람들과 경쟁해서 밀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 특권층은 통일이 되더라도 자기의 지위와 특권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를 원한다"면서 "한국 드라마가 들어간다고 해서 북한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