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남한에 정착해 살던 탈북자가 또다시 자진 월북했다가 가족들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사실이 소식통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잠깐 동안 체제선전에 이용하다가 쓸모없다고 판단되자 수용소에 보낸 것입니다.
서울에서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의 한 탈북자가 가족들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최근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소식통은 시 보위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 갔다가 돌아온 강병철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회령 22호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며 "여동생만 따로 청진 수성관리소(25호관리소)에 보내졌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함경북도 회령시 소식통도 "강병철은 한국에서 돌아 온 후 청진시와 함흥시 대학들, 국경경비대와 해안경비대를 돌면서 1년동안 남한비방 강연을 했다"며 "그 후 회령시에 돌아와 4달쯤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가족들과 함께 보위부에 끌려갔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1978년생인 강병철씨는 북한거주 당시 인민군 체육단에서 권투선수로 활약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한쪽다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가족, 친척들이 모두 보안(경찰)계통 간부로 근무하고 있어 북한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 속했던 강병철씨는 사고를 당한 뒤 체육단에서 나와 회령시에서 무직자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남한으로 탈북할 결심을 가진 것은 지난 2004년, 아버지가 주변의 모해로 억울하게 해임된데 울분을 느끼면서였습니다.
강씨는 쌍지팡이(목발)에 의지해 친구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에서 방황하던 중 남한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5년 12월 탈북자 정착지원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경기도에서 살았습니다.
강씨와 함께 하나원에서 생활한 탈북자 심성희(가명)씨는 "그가 장애인인 것으로 하여 남한에서 다른 탈북자들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하나원에서 장애인 2급 판정을 받은 그는 수원시 천주교 교구에서 미국에 주문해 제작한 1천만원짜리 고급 의족도 선물로 받았고 여러 종교단체들에 출연해 강연활동을 벌려 돈도 적지 않게 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북한과 연계를 가지는 과정에 가족들의 끈질긴 월북 설득을 받았습니다.
특히 회령시 계림동 보안소(파출소) 소장을 하는 삼촌이 "일체 과거를 묻지 않고 생명을 담보한다"고 설득해 강씨의 월북을 치밀하게 조종했습니다.
강씨와 안면이 있는 탈북자들은 그가 하나원 동기들의 인적사항이 담긴 노트북과 함께 동거하던 애인의 돈까지 모두 챙겨가지고 2006년 7월에 월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언변에 능했던 강씨는 월북 후 국가보위부가 써준 각본대로 1년동안 대학과 군부대들을 돌며 남한을 비방하는 강연에 이용됐습니다.
그후 회령시에 돌아 온 강씨는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며 살다가 2008년 3월 말경 영문도 모른 채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는 강씨의 월북을 권유했던 삼촌네 식구들까지 8명을 회령 22호 관리소에 끌어갔고 강씨의 여동생만 따로 청진시 수성관리소에 보냈다고 소식통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동생만 따로 수성관리소에 보내진데 대해 소식통들은 "동생이 키도 크고 소문난 미인이었다"며 "수성관리소에는 간부들의 시중을 드는 여성정치범들이 있다"고 말해 그녀가 간부들의 노리개로 끌려갔음을 시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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