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이 재일동포 북송실현 50주년을 맞아 영화를 제작해 돌리면서 존폐위기에 처한 조총련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정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북한이 재일동포들의 북송 실현 50주년을 맞아 만든 영화 '동해의 노래' 1,2부를 주민들에게 상영하고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3일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이 영화 제작을 맡았던 감독(장영복. 연출가, 인민예술가)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동기에 대해 북송 실현 50년이 되는 2009년 12월 16일을 맞아 한덕수(2001.3. 사망) 전 총련의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제작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영화 제작진은 귀국선이 떠나던 일본부두를 형상하기 위해 북한 나진의 어느 한 부두를 당시 일본 항처럼 꾸리고 근 2만 명의 주민들을 동원해 공화국기(인공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게 하는 등 수차례 반복 촬영을 거쳐 영화를 만들었다고 조선신보는 전했습니다.
특히 한덕수 의장 역을 맡은 북한 배우는 "오로지 김일성 주석을 믿고 따르고 그의 사상을 구현하는데 인생을 바친 훌륭한 해외전사"의 모습을 형상하기 위해 한 의장의 인물 묘사와 연설 방법 등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영화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듯 영화는 북한 당국의 기만적인 선전에 의해 실현된 북송 사업을 재일동포들에 대한 김일성의 사랑과 배려로 선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50년 전에 있은 재일교포 북송사업이 기만사업이라는 것이 북송교포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13살 때 총련 간부였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귀국선에 올랐던 북송교포 출신 탈북자 김윤 씨는 자기 아버지도 청진항에 도착해서야 북한에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김윤: 그때도 살기 좋고 다 무료교육이고 무상치료이고 사회주의시책이 좋다고 알고 저를 데리고 갔거든요. 그런데 청진항에 내려서 놀랐거든요. 차마 이 지경인줄 몰랐어요.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뽀얀 흙먼지가 날리고, 다닥다닥 모여 붙은 하모니카 주택과 낙후한 문화시설을 보면서 총련 간부였던 그의 아버지조차도 북한이 이렇게 낙후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땅은 재일동포들이 마음대로 올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귀국자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고 도망치려는 계획까지 했다고 다른 북송교포 출신 탈북자는 말합니다.
탈북자: 그때 아버지는 오셔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지도를 갖다 놓고 연안, 배천 이쪽 38선을 넘어서 다시 또 일본으로 가려고 했대요. 그리고 작전을 짜고 가다 잡히면 우리 다 죽자, 칼로 배를 가르고 할복하고 죽자고 토의를 했대요.
이렇게 북한에 들어간 북송 교포들은 항상 북한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북송교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평양과 남포의 노동당 청사 앞에서 집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일본처럼 시위를 벌이면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시위를 벌이는 북송교포들을 달래다가 나중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가고 멀리 지방 도시로 뿔뿔이 분산 거주시켰습니다.
북한에서 귀국자들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귀국자들은 일본의 가족 친척들이 보내주는 돈의 일부를 ‘애국주의’ 명목으로 북한 정부에 바쳐야 했고, 그 나머지 돈은 돌려주지 않아 찾을 수 없었다고 북송교포 출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북한 내에서 살기 어렵게 되자, 북송 교포들은 중국 국경을 통해 북한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탈출한 북송교포 만해도 한국과 일본에 수백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이는 북한에 들어간 10만 명이 넘는 북송 교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북한이 이처럼 수용능력이 없으면서도 재일동포들을 받아들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총련계 자금줄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 친척들을 인질로 붙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더 많은 해외동포들을 포섭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만적으로 이뤄진 북송 사업을 기리기 위해 북한은 영화로 만들어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일본에서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된 조총련을 추스르고 총련에 등 돌리고 있는 재일동포 2세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