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각도로 본 김정일의 방중 결과 Q/A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시각을 달리 하면 성과로만 일관했다고 말할 수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과 특수 관계를 재확인해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가운데에서도 실질적인 경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허용하는 한편 중국의 충고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반드시 성과만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자

: 북한이 중국과 특수 관계를 재확인한 이면에는 북한의 부담도 있습니다. 중국은 알다시피 조선반도의 안정을 희구하는 외교 정책을 폅니다. 조선반도의 안정이 깨질 경우 자국의 안전은 물론 경제 발전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조선반도의 긴장이 고조한다는 점에 유의해 북한에 긴장을 높이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정상회담을 통해 전달했다고 보입니다. 중국은 남북관계의 악화 방지와 더불어 6자회담의 재개, 개혁/개방의 착수 등을 권고했다고 관측됩니다.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북한에 이 같은 사항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한국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의 방문 목적은 대규모 식량 지원을 얻어내는 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무상으로 하는 식량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목적 달성의 실패로 봐야 하나요?


기자

: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경제 지원과 관련해 시급한 식량, 유류 등의 지원을 받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장기 국익의 관점에서 동북 3성과 북한의 라진항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지원 내용에는 당장 급한 식량이 빠져 있었습니다. 북한은 현재 춘궁기를 맞아 식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김 위원장이 명목적으로는 경제 지원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받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런 중국의 태도에 실망해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양국 지도부가 함께 보려던 피바다 가무단의 공연 ‘홍루몽’을 관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앵커

: 6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김 위원장과 회담하면서 개혁/개방의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을 하라는 충고로 볼 수 있습니까?

기자

: 충분히 그런 충고로 볼 수가 있습니다. 원 총리는 같이 사회주의 간판을 달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로서 김 위원장에게 현재의 경제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보입니다. 더구나 중국은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을 초청해 상하이를 비롯한 여러 곳을 보여주면서 개혁/개방의 길로 나갈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중국은 70년대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서 미국과 함께 G2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원 총리는 중국이 사회주의 간판을 달고도 이 같은 경제적 성과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도 어서 개혁/개방에 나서라는 뜻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보입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에 대해 갖는 느낌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기자

: 개혁/개방은 싫다는 입장입니다. 김 위원장은 북조선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이 방향으로 나간다면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자신의 권력 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이 길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개혁/개방=정권 붕괴’를 의미합니다. 북조선이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김 위원장은 그동안 통치를 위해 해온 거짓말이 일순에 탄로나면서 더는 정권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개혁/개방을 말하는 간부를 숙청해 버렸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를 무서워 하는 상황은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 행태에서 잘 드러납니다. 북한 매체는 개혁/개방과 관련한 원 총리의 발언을 정확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원자바오/온가보 총리가 “개혁/개방의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 내용을 “중국의 경제 발전 정형에 대해 소개했다”로 바꿔버렸습니다. 김 위원장은 원 총리의 그런 발언이 북조선 인민에 알려지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특수 관계를 재확인했는데 북한이 이것 때문에 오히려 중국에 더 종속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요?


기자

: 북한은 중국에 기댈 수가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대외적으로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항이나 양면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런 특수 관계를 재확인하면서 나름의 이득을 챙겼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제안한 5개 협력 방안에는 ‘내정에 관한 의사 소통의 강화”까지 들어있습니다. 이 대목은 중국이 북한 내정에 영향력을 증대하겠다는 동시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뜻으로서도 풀이됩니다. 불만의 사례로는 2차 핵실험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주권국 간에 이 같은 표현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북한을 더 속국화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은 중국 네티즌의 거센 비난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 상당수의 중국 인민이 김 위원장이 중국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인터넷을 통한 대화 통로인 트위터에 비난의 글을 올렸습니다. 어느 중국인이 대화방에 “김정일은 중국을 떠나라”고 글을 올리자 상당수 중국인이 이에 호응해 글을 게재했습니다. 중국 복건성의 피터 가오라는 사람은 “김정일은 가라 가라 가라”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실었습니다. 또 많은 중국 인민은 김 위원장이 조선 인민의 피와 살을 짜내서 호화스런 방문을 하고 있다며 요란한 중국 방문을 비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 인민의 눈에는 단지 독재자로 비쳤을 뿐입니다.

앵커

: 김 위원장은 인민의 복지라는 견지에서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기자

: 개혁/개방으로 상당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북한도 이 방향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해야 했습니다. 앞에 잠시 설명한 바처럼 중국은 개혁과 개방으로 방향을 잡은 지 30여년 만에 경제대국으로 일어섰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고수에 바탕을 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피폐한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중국은 열강에 굴욕을 당하던 19세기 말의 중국에서 탈피하지 못해 덩치만 크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렇지만 1978년부터 시작한 개혁/개방의 덕택에 이젠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로 등장했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운용해온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대항하는 체제로 선을 보였습니다.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길 이외에는 활로가 없습니다.

앵커

: 지금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한 결과에 관해서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