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해 무역대표 부인 탈북 Q/A]

중국 상해에 주재한 북한 무역대표 심 모 씨의 부인 리 모 씨가 싱가포르 한국 대사관에 보호 신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북측이 부인까지 감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탈북자 출신인 <북한사회연구원> 김태산 부원장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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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1996년 말레이시아에서 무역대표로 일하다가 평양으로 소환돼 심 모 대표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김 부원장은 "이번 일을 북한 당국이 비밀에 부치고, 내부 단속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김태산 부원장을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김태산 부원장님, 안녕하세요.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박성우: 부인은 자식과 함께 한국에 지난달 초에 입국했거든요. 남편이 지난 1월 평양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해서, 부인이 한국으로 가는 걸 결정했는데. 남편은 이런 경우, 평양에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되리라고 전망하십니까?

김태산: 남편이 지난 1월에 들어갔다고 하면,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을 맞으면서 해외 대표부에 나가 있던 대표들을 평양으로 회의한다면서 모두 소환하는 때입니다. 그때 들어오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바칠 선물도 가지고 오라고 하고, 또 회의 준비를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준비해서 오라고 합니다. 들어가서는 대표부에서 갖고 온 선물도 올리고 간부들이 명절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도 뽑아내고, 그런 차원에서 명절이 다가오면 해마다 한 번씩 각 해외 대표들을 불러서 회의합니다.

지난번에 저도 말레이시아 대표부에 나가서 사업하는 과정에서 저도 이런 케이스(사례)로 불행을 당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명백한데. 그 남편분이 들어가서 20일이나 한 달 동안 회의를 끝내고는, 이른 시일 내에 자신의 대표부 위치로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했고, 부인이 위협을 느껴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점은, 분명히 그 남편이 보위부 기관이나 어떤 법 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걸 말하는 대목입니다.

1월에 들어갔다가 2월 초까지는 회의를 끝마쳤을 것이고, 그때부터 조사를 받아서 한 달이 지나서 아직 그것이 해명되지 않아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이게 보위부 사건 같기도 하고, 어떤 재정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재정 관계가 문제가 됐다면, 이게 해명되면 다시 자기 위치로 내 보내거든요. 그런데 보위부 수사 단계에 걸리게 되면,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기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부인도 강제 소환할 수가 있습니다.

박성우: 현재 보위부가 조사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군요.

김태산: 네. 저도 뉴스를 봤는데요. 그 대표 아래 직원이 북한에 그 대표의 결함을 고해 받쳤기 때문에 대표가 지금 잡혔다는 걸로 진술했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를 봐서는, 다른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관계, 즉 보위부 사건으로 추측됩니다.

박성우: 보위부 사건이라면, 좀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어떤 게 있습니까?

김태산: 예를 들자면, 한국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 대표부에 나가서 돈벌이가 잘 안되면 한국 기업가와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 거래를 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응당 국가보위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대표들은 이걸 보고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아는 경우가 있거든요.

북한 대표부를 보면 대표가 있고 부대표가 있습니다. 항상 두 사람을 내 보내는데, 그 대표와 부대표 사이가 항상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대표의 결함을 부대표가 북한에 고발해서 잡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이 케이스(사례)가 그런 것 같고. 물론 그 대표의 결함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직 나오지 못하고, 부인이 위협을 느껴 이쪽으로 망명한 걸 봐서는, 분명히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사건인 듯합니다.

박성우: 알았습니다. 다른 질문 드리겠습니다. 남편은 상하이(상해)에서 무역대표로 일하고 있었고, 부인도 상하이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인이 남측 공관에 보호 신청을 한 곳은 싱가포르입니다. 남편이 평양에 돌아가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북한 측 공관에서 부인을 감시했을 텐데. 어떻게 싱가포르까지 갈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들거든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태산: 북한이 부인에 대해 감시를 해야 정상이지만, 그만한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경이나 심양에는 북한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통해서 감시할 수 있지만, 상하이에는 그런 보위부 기관이나 영사관이 나가 있지 않거든요. 오직 대표들, 그러니까 무역 대표들이 파견돼서 현지 지사에 나가 있는 격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해서 감시 역량은 없습니다. 소환을 해야 하는데 아직 소환하지 않고 있다가 북한도 저런 경우를 당했는데. 남편이 들어가서 취조받는 과정에도 대체로 부인들은 좀 불안하지만 (행동은) 자유롭습니다.

1996년 97년에 저도 말레이시아 대표로 나갔다가, 제가 북한에 들어가서 죄 아닌 죄 때문에 조사를 받다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 집 아내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자식을 하나 데리고 몇 달 동안 혼자서 집세도 내지 못하고 안타깝게 울고만 있다가, 6개월여 뒤에 다른 대표부 사람들이 가서 비행기 표를 사줘서 평양으로 철수했습니다.

또 그 후에 여기 와 있는 현성일 씨가 있지요. 그분 경우에도 부인이 먼저 남한으로 왔지만, 현성일 씨를 특별하게 감시하지 않고 놔뒀기 때문에, 현성일 씨까지도 이쪽으로 온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를 보면, 본인 하나만 죄가 있으니 조사를 하고 그러지, 부인까지 감시를 붙이지는 않습니다.

박성우: 부원장님께서도 무역 대표로 나가셨다가, 평양에 회의하기 위해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부원장님께서는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김태산: (웃음) 오래된 일이고, 긴 이야기인데. 제가 1996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무역 경공업 대표로 나가 있었습니다. 활동하던 중, 그해 8월 평양에 회의를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거기서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놓고 조사를 하더군요. 그 후로 2년 8개월 동안 철직 당해서 혁명화를 했습니다. 혁명화를 거치고 다시 은하 무역총국에 지도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발탁돼서 체코에 나가서 사업하던 도중에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다.

박성우: 가벼운 사안이어서 나올 수 있었던 건가요?

김태산: 그렇습니다. 제가 그때 사건을 겪은 것은, 그전에 제가 평양에 있을 때 합영회사를 하면서 재정 관리를 잘못했다는 죄를 쓴 것이었지, 저는 그 어떤 정치적인 죄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위부 감옥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3년간의 혁명화로 끝이 났던 겁니다. 그때 제가 보위부 사건으로 걸렸다면, 영원히 소생하지 못했지요.

박성우: 그러면 부원장님의 부인이 현지에서 평양으로 돌아온 건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입니까?

김태산: 6개월이 지나고 나서 들어왔습니다. 제가 계속 조사를 받고. 특별한 죄가 없으니까 잡아넣지는 못하고. 여기로 말하면 불구속 수사지요. 6개월 동안 제가 말레이시아 대표부를 비우니까, (아내는) 집세도 내지 못하고, 전기료도 내지 못하고, 살림이 곤란하고. 아내가 거기서 아들을 하나 데리고 울면서 지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6개월이 지나니까, 그게 사건화되면서, 싱가포르 대표가 가서 경상정리를 해서 집주인에게 빚진 걸 다 청산해 주고, 비행기 표를 사주고, 이삿짐을 꾸려 줘서, 6개월 만에 제 아내도 다시 평양 땅을 밟게 된 겁니다.

박성우: 중국 상해 주재 무역대표였다는 심 모 씨는 아버지가 노동당 부부장 출신이고, 지금은 은퇴했다고 하고요. 어머니는 대학교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고위급입니다. 그 고위급 출신 무역대표의 아내가 지금 한국으로 넘어온 것인데. 이 정도 사안이면, 북한 내부에 이 소식이 알려지면, 동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예전 사례도 많은데, 고위급이 탈북해서 남한에 도착했을 때, 북한 당국은 어떻게 대처하나요?

김태산: 한마디로 극비밀리에 붙입니다. 제가 혁명화를 할 때, 96년 겨울인데, 그때 황장엽 선생이 남쪽으로 왔습니다. 당시에 외국으로 출장 나가게 됐던 대표들을 일체 나가지 못하도록 갑자기 정지시키고, 중국과 하는 대외사업 관계까지도 절단하면서,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말을 하지 않고 며칠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비밀이 안 새나갈 수는 없지요.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그러면서 해외 대사관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외교) 전문이 나가고. 그러면서 아주 북한 내부 분위기가 불안해 지지요.

한마디로 말해,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무역 계통에 있는 사람, 대외사업 계통에 있는 사람, 보위기관에 있는 사람만 아는데, 이 사람들이 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누가 해외로 도주했다는 말이 나오면, 서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는 걸 어려워하고, 입을 닫고, 그저 눈치만 보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러나 해외로 달아난 사람에 대해서 당 조직은 반역자다 뭐다 하면서 평가를 하지만, 다른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그렇게 악독한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박성우: 한국 언론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의 고위급 탈북자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도 쓰고 있습니다. 부원장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김태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난번 황장엽 선생이 왔을 때도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리라고 추측했지만, 이런 일은 돌발적으로 하나씩 일어나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해외에 내보내는 사람은 원래 철저히 준비된 사람을 내보내는 데다가, 그 자식을 다 내보내지 않고 인질로 붙잡아두기 때문에, 해외로 도주한다는 건 웬만한 결심을 품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겁니다.

저도 체코로 나갔다가 이쪽으로 온 것은, 저를 다시 붙잡아 들이려 한다는 기밀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택했을 뿐이지, 저를 붙잡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면 북한에 사랑하는 저의 자식이 둘 남아 있고, 형제와 친구가 남아 있는데, 누가 그 험난한 길을 가겠습니까. 그러나 북쪽 정부가 벌이는 일은 사람이 그렇게 극단의 행동으로, 극단의 길로 가게 하여 놓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평양에 다시 들어가면 죽는다’는 극단의 엄포를 조성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지, 앞으로 그 뒤를 이어서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박성우: 알았습니다. 북한 상하이 무역대표 부인의 탈북과 관련해서 북한사회연구원 김태산 부원장과 함께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자유아시아방송에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산: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