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회담이 결국은 결렬됐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중국의 양제쯔 외교부장까지 나서서 회담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막판에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번 회담의 최대 목표는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 과정을 마무리하고, 3단계인 핵폐기 단계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검증 의정서에서 시료 채취를 담보할 내용을 명시하자는 걸 북한이 반대해서 결국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차기 회담 일자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6자회담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의 인선과 정책을 확정하기 전까지 상당 기간 공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박기자. 검증 의정서가 왜 중요한 건지, 그리고 북한은 왜 이걸 반대한 건지 이런 걸 우리 청취자들이 좀 쉽게 이해를 하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성우:
네. 북한이 지난 6월에 자기가 갖고 있는 핵 개발계획을 ‘신고’를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얼마를 생산했고 이런 식인데요.
그런데 이게 정확하게 신고가 된 건지 이걸 확인을 해야 되잖습니까? 바로 이 확인 작업을 위해서 ‘검증 절차’가 필요한 거구요.
그 검증을 누가 어떻게 할 건지에 관한 합의문을 ‘검증 의정서’라고 부르겠다는 거지요.
진행자:
검증 의정서에서 ‘시료 채취’가 핵심이던데 시료 채취는 뭘 하는 건가요?
박성우:
네. 쉽게 설명하자면 문제가 된 영변 핵시설에 가서, 시설 주변의 흙이나 물을 수집하거나, 아니면 핵시설 주위의 미세입자를 채취해서, 이걸 분석하는 겁니다.
핵 과학자들은 이런 시료를 분석하면 영변 핵시설에서 언제, 어떤 행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모두 밝혀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이 그간 생산했다고 신고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절차인 거지요.
그래서 북한은 검증 의정서에서 최대한 모호성을 유지하려고 했구요. 반면, 나머지 나라들은 최대한 분명하게 문서화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서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의정서 채택이 힘들어진 거죠.
진행자:
시료 채취는 검증의 ‘방법’인데. 그럼, 이번 회담에서 검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시간이 문제가 된 건 왜 그렇습니까?
박성우:
네. 검증을 누가 할 것인가 제일 정확하게 하려면 IAEA 국제원자력기구가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1990년대 초반 1차 핵위기 때 ‘특별 사찰’ 문제를 놓고 북한이 IAEA나 미국과 심하게 갈등을 빚은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IAEA가 직접 사찰을 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구요. 하지만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조차도 IAEA의 역할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번 회담 내내 맞섰습니다.
다음으로, 검증 대상도 문제였습니다. 북한이 이미 신고한 핵 시설도 있지만, 신고를 하지 않은 시설도 있습니다. 핵폐기물 시설이나 동위원소 생산연구소같은 곳인데요.
미국과 한국 등은 북한의 핵 활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미신고 시설도 검증을 해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시간과 관련돼 있습니다.
북핵 2단계는 핵 불능화를 끝내는 건데요. 행동대 행동 원칙에 따르면 불능화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검증은 세 가지 밖에 없다는 게 북한의 입장입니다. 이게 바로 현장방문, 문서검토, 그리고 핵과학자 면담 이 세가집니다.
그러고 나서, 3단계, 핵폐기 과정에 들어가면, 그때 가서 북한은 시료 채취를 허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시료 채취는 말씀드린 데로 북한의 핵 활동을 전부 “까발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쯤 되면,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도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맞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 놔야 한다는 게 북한의 논립니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나머지 나라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2단계 핵 불능화 과정에서 북한이 신고를 했는데, 신고 내역이 맞는지 틀린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지요.
그리고 북한이 허용할 수 있다는 세가지 검증만 갖고는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한 전체 그림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과학적 검증 절차는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만약에 이번 회담에서 시료 채취에 전격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각론에 들어가면 이렇게 문제가 더 복잡해 지기 때문에, 이게 참 합의가 어려운 회담이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예상 밖으로, 11일 오전에 중국에 의견문을 냈지요? 북한이 중국에 전달한 의견문의 내용 중 하나가 ‘경제 에너지 제공과 검증 의정서를 연계하지 말라’는 건데. 이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박성우:
네. 10일 저녁에 이미 ‘이제 회담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11일 오전에 북한이 의견문을 냈다는 거 자체가, 좀 예상 밖이었고, (왜냐면, 대화를 계속하자는 뜻이니까요) 또 회담 관계자들에게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었습니다.
두 가지 사안을 연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당사자가 바로 한국이었지요?
북한이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이 두가지 사안을 연계해서 배수진을 쳤으니, 한국이 이걸 풀 수 있는 제안을 좀 해 달라.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구요. 하지만 반대로, 한국이 이런 조건을 만들었으니 회담이 결렬된 것도 한국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 소재를 한국으로 떠 넘기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걸로 해석됐습니다.
진행자:
이번 회담에선 한국의 행동이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진 듯 하던데. 현지에서 본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박성우:
네. 예전엔 한국이 북한 입장을 상당히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많이 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의 경우엔 북한이 판을 깨려고 하면 한국이 중재를 하면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이를 통해서 합의를 이끌어 냈는데, 이번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북한을 설득하려기보다는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이 검증 의정서를 받지 않으면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은 없다’ 이렇게 배수진을 쳤었지요.
이런 행동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인 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이죠. 그래서 상호주의, 그러니까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 인식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핵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면 대북 경제 지원도 할 수 없다고 나온 거지요.
진행자:
네. 박성우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