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루마니아 일간지 'Adevarul' (한국어로 '진실') 기자들은 루마니아에서 유학중인 북한 유학생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북한 유학생들 10명이 석유와 가스 산업으로 유명한Ploiesti ('플로예쉬티')라는 루마니아 도시에 위치한 '석유와 가스 공학 대학교'에 유학중입니다. 그 북한 유학생들 10명중 4명이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루마니아 기자와 인터뷰를 한 북한 유학생 김원학씨(22세), 문성권씨(36세), 당철령씨(35)와 김펼씨(22)는 일반 대학교 강의를 듣기 전 루마니아어 공부를 하여 루마니아어를 곧잘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루마니아 유학을 그리 좋아하진 않으며 조국인 북한을 많이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루마니아의 높은 물가에 비해 장학금 액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유학생들은 기숙사비를 직접내진 않지만, 생활비를 한달에 65유로 (약 97 미국 달러)밖에 못받기 때문에 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또 지난 몇년동안 짧은 기간내 급속히 경제발전을 이룩한 루마니아에는 자동차들이 많기 때문에, 교통이 아주 복잡합니다. 그래서 북한 유학생들은 루마니아의 교통 혼잡이 마음에 안든다며 평양의 공원들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플로예쉬티에 재학중인 북한 유학생들이 자유시간에 즐기는 것은 산책과 축구, 배드민턴입니다.
북한 유학생들의 불만을 들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북한과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는 독재 체제, 정치 탄압, 인권 유린과 식량 부족을 겪던 루마니아였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는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은 북한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북한은 워낙 고립된 공산주의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들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와 같은 동유럽 나라에 공부하러 온 북한 유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습니다.
저도 공산주의 독재시절인 1989년에 루마니아의 부쿠레쉬티대학 영어영문과 1학년을 다니면서 같은 대학을 다니던 북한 유학생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루마니아 학생들과 대화를 그리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가벼운 인사만 건넨다든지 말을 몇 마디 했을 뿐 더 의미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유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루마니아말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당시 공대에 다니던 저의 사촌형도 북한 유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주변에 다른 북한 유학생들이 없어서 그랬던지 북한 당국의 감시를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고 루마니아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곤 했습니다. 그 때 그가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던 모습이 여전히 어색하게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당시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개인숭배도 아주 심했지만, 그래도 독재자의 사진이 들어있는 배지를 달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짓궂은 루마니아 공대 학생들이 그 북한 유학생에게 배지가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면 가끔 그는 배지를 안 달고 다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 학생도 다른 북한 유학생들처럼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지만,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성적이 잘 안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 수준을 보면 북한 유학생들은 거의 만점의 성적을 받아야 북한 정부 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학금이 끊기고 북한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북한 유학생의 성적이 좀 낮게 나올 경우 주변에 있는 루마니아 친구들이 교수들에게 부탁을 하여 그의 점수를 높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국제 언론은 북한의 인권 유린, 정치 탄압, 식량 위기나 주변 나라들을 위협하는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문제에 대해 많은 보도를 해 왔습니다.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시대에 대학을 다니며 북한 유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는 루마니아 신문 기자들은 약 3년전 루마니아 대학생의 입장에서 본 북한 유학생에 대한 신문 기사를 내었습니다.
대학시절 북한 유학생들을 만났던 루마니아 신문 기자들은 당시 북한 유학생들을 보면 공산주의 국가이던 루마니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루마니아는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 중 독재자 개인숭배,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식량 부족이 가장 심해 북한과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북한을 따라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 정권하에 루마니아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살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그 어두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몰래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나이트클럽도 다녔으며, 경찰이 눈을 감아 주면 암시장에서 미국이나 서유럽의 잡지와 소비재, 특히 음반이나 옷, 화장품도 살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북한 유학생들에게는 루마니아가 너무나 개방적이라 자신들이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고 루마니아 신문 기자들은 말합니다.
북한 유학생들은 공산주의 시절 동유럽에서 독재와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하던 루마니아를 개방적인 나라로 생각했다면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심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20년 후 유럽연합 회원국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북한은 개혁, 개방과 현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탄압과 가난을 겪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루마니아에 유학하는 북한 학생들처럼 현시대에 적응해 사는 데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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