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진항의 추가 개방이 장밋빛 전망은 아닙니다. 라진항이 중국 동북3성의 물류를 처리하기엔 규모가 협소하고 낡아서 추가로 개발해야 합니다. 북한 당국이 현재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한 이를 국제적인 항구로 개발하는 데 필요한 외자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라진항 추가 개방에 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요?
기자:
최근 라진항의 실태에 관한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3월25일 라진항의 문제를 짚은 르포 기사를 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라진항의 추가 개방이 얼마 전 언론에 발표될 때 각광을 받았던 만큼 전망은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닙니다. 중국 다롄의 창리(創立) 그룹이 확보했다는 라진항 사용권은 라진항 또는 라선시와 직접 체결된 사항은 아니고 인민군에 소속한 기업과 하는 합작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라진항의 부두 규모가 너무 적고 낡아서 동북 3성은커녕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물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환구시보는 중국이 창리 그룹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는 출구를 얻었다는 관측은 현재 시점에서는 일단 과장된 이야기라고 평가했습니다.
앵커:
중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장롄구이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도 라진항의 추가 개방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장 교수의 견해는 무엇인지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장 교수는 잡지 <재경(財經)>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라진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고 작년 11월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에서 탈퇴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동북3성 가운데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은 자원이 풍부하고 발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과 러시아에 막혀서 바닷길을 확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장 교수는 북한이 이런 상황을 잘 알고 라진항을 지렛대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 국가개발은행의 출범, 라진항의 추가 개방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장 교수는 북한 당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해 선군정치에 들어가는 돈을 확보하기 위해 이 같은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이 조치들이 중국식의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다고 장 교수는 진단했습니다.
앵커:
북한은 1월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개정해 라선 지대를 외자 유치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합니다. 이 법이 라진항 개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기자:
새 라선지대법이 기업친화적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라선 지대에서는 “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된다”는 규정이 문제입니다. 이 조항은 외국인에게는 별도의 법규정을 적용하거나 외교관에 준하는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세제 혜택이 미미한 데다가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들이 병행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외국인을 채용할 때 북한 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의무화한 점도 규제 강화로 해석됩니다. 이보다는 유엔의 대조선 제재가 아직 해제되지 않고 있는 데다 미국과 북한 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아 외자를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점이 라진항의 개방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입니다. 물론 이 법은 라선 지대를 개발해 외자 유치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공화국 영역 밖의 조선 동포”라는 표현을 써 남쪽의 기업인에게도 라선 지대를 개방했습니다.
앵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3월16일 북한 지도부가 라선시에 연간 6천만 유로를 상납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라진항 개방에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기자:
이 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라진항의 개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라선시는 과거 무역과 관광 등으로 6천만 유로의 수입을 올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돈이 이곳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면 라진항을 국제적인 수준의 항구로 개발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평양에 아파트 10만 가구를 지으려고 돈을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보도에 앞서서 50년대 건설된 낡은 아파트를 헐고 새 고층 아파트를 지으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라선시는 단지 외화를 얻는 창구 역할만을 합니다.
앵커:
이런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지만 라진항이 개발되면 개방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요?
기자:
중국이 동해로 나가는 길을 얻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 타임즈는 중국이 무려 1세기만에 동해로 나가는 길을 얻었다고 북한이 라진항을 추가로 중국에 개방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중국은 7월부터 라진항을 사용하면서 몽골 자원을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됩니다. 라진항을 통하면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방으로 수송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몽골에서 자원의 보고인 ‘초이발산’과 그와 인접한 중국 영토인 ‘아얼산’을 철도로 연결하면 초이발산의 광물을 라진항까지 나를 수가 있습니다. 몽골과 중국을 연결할 철도의 구간 거리는 433킬로미터에 불과합니다. 라진항 개방을 계기로 몽골 자원을 개발할 필요성이 이처럼 높아가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이 라선특별시를 지정해 라진항 개발에 나서면 상당한 경제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한국의 연구소에서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현대경제연구원은 2월 15일 ‘북한 라선특별시 개발 전망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내고 “라진항 개발로 2020년에는 연간 400만 TEU (1TEU=20피트 콘테이너)의 물동량 처리가 예상된다”면서 “이것은 2008년 북한 국내총생산 (GDP)의 1.6%에 해당하는 4억3천만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연구원은 “북한이 동북3성의 개발에 맞춰서 상당량 화물을 라진항으로 끌어올 생각이며 중국도 다롄항 대신 라진항을 이용해 러시아와 몽골까지 물류망을 연계할 계획을 갖고 있어 개발 전망이 밝다”고 평가했습니다.
앵커:
현재 라진항의 추가 개방과 관련해 진척되고 있는 사항이 있습니까?
기자:
중국 지린성 정부가 3억 위안을 들여 국경 지방인 함경북도 은덕군 원정리와 라선특별시 라진항을 잇는 도로를 현대화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창리 그룹은 2008년 원정리-라진항 도로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라진항 부두 3호를 50년 사용하는 권리를 얻었지만 그 정도 공사를 맡을 기업이 아니어서 지린성 정부가 나섰다고 전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인민군 2개 공병여단이 최근 라선시와 청진시 일대에 배치돼 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중국의 장춘일보(長春日報)는 9일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가 산허(三合) 통상구를 국제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전략 하에 산허-회령-청진을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키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라진항의 추가 개방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