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절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북한 전문가인 이동복 명지대 교수는 14일 북한이 최근 남북 적십자 간 연락망을 단절한 것은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새 판을 짜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대표단장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이 교수는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앞두고 자유아시아방송과 가진 단독회견에서 남북 적십자 회담은 지난 37년간 모두 16차례에 걸쳐 고작 1,600명이 상봉한 비효율적인 행사에 불과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지금의 방식대로 이산가족들이 모두 상봉하려면 최소 500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동복: 적십자 회담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적십자 회담은 정치회담이지, 이산가족을 돕는 회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 회담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산가족을 자꾸 ‘인도주의'와 결부시키는데, ‘인도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인권’의 문제입니다.
이 교수는 지금처럼 한번에 100명씩 만나는 남북 적십자 회담을 대신할 새로운 틀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국제적십자사 (ICRC) 산하의 중앙심인사업소 (CTA)가 제시한 4 단계 방식입니다.
이동복: 1 단계는 생사와 주소확인, 2 단계는 서신교환. 3 단계는 상봉과 상호방문, 4 단계는 본인이 원할 경우, 원하는 지역에서 재결합시키는 겁니다. 100명을 골라서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이산가족 모두에게 국제적십자사가 하는 것을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둘째는, 서독과 동독의 사례를 바탕으로 상호주의를 채택하는 방식입니다. 동서독은 이 방식으로 통일이 될 때까지 서독주민 800여만 명이 동독에 있는 가족과 친지를 자유로이 방문했고, 서독에 방문한 동독 주민들만도 270여만 명에 달았다고 이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동복: 동서독 적십자사가 회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실용적으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가서 이산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무제한으로 가게 해주었죠. 다만 얼마 이상 액수의 돈을 국경에서 동독 마르크로 바꾸어서 가지고 들어가요. ‘바꾼 돈은 되바꾸지 말아라’ 그렇게 해서 서독 사람은 이산가족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동독은 일 년에 한 백 명도 안 되는 인원을 돈 한 푼 안주고 65세 이상은 서독으로 추방하는 거예요. ‘가서 돌아오지 말라’고 보내는 거죠.
이 교수는 적십자 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월 전면 중단된 상태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재개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마련되는 상당한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공식회담은 중단됐어도 이산가족간의 상봉은 음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동복: 캐나다에 있는 친북 단체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중국을 통해서도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받아 만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어떤 일이 있냐면, 보위부 직원들에게 돈을 주고 보위부 사람의 안내를 받아서, 남한사람들이 북한의 아주 깊은 데까지 들어가서 자기네 가족을 만나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에 대해, 미국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척 다운즈 사무총장과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 (NED)의 칼 거시먼 회장은 앞으로 유엔인권이사회와 국제적십자사가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검토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 교수를 필두로 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지난 10일 유엔본부를 방문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상봉문제에 유엔이 나서주기를 촉구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관련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