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미-북 한인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이차희 씨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오늘은 미국에 있는 한인들과 이들의 북한 내 이산 가족의 상봉을 위해 지난 10년 동안 한인 사회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미국 정부가 이산가족상봉지원법을 제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차희 씨를 전화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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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에 살고 있는 이차희 씨 자신도 북한에 오빠가 살고 있는 이산 가족입니다. 재미이산가족상봉위원회 공동의장이며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이 씨는 그동안 한인 사회단체들과 힘을 합해 미국 연방 의회와 행정부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인 이산가족들의 북한 가족 상봉 실현을 호소하고 꾸준히 추진한 결과 ‘이산가족상봉지원법’이 작년 1월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의회와 행정부의 집행 의지 부족으로 이 상봉지원법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재미이산가족상봉위원회 공동의장이며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이차희 씨. 사진은 이 씨가 2006년 2월 워싱턴에서 열린 '샘소리'의 발족식에 참석한 모습. '샘소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북한 출신 한인이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상봉하는 일을 돕는 비영리 단체. RFA PHOTO

미국 의회조사국이 1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한인 이산가족들의 상황은 어떻고, 북한 혈육과의 상봉은 가능할 것인지, 이차희 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 미국내 이산가족은 미주내 한인들 중 북한에 가족있는 분이겠죠.

이:그렇습니다.

전:그럼 미국 시민권자여야 합니까?

이: 아닙니다. 영주권자도 포함됩니다.

전: 현재 미국 내 한인 중 이산가족은 몇 명 정도로 추산됩니까?

이: 10여 년 전에는 40만 명으로 추산됐습니다. 하지만 이산가족인 분들의 나이가 7,80대이고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10.8퍼센트가 돌아 가시고 있고, 사람의 생명은 통계로만 예측하기도 어려워, 제 경험으로 추정하면 5만명을 넘을 것 같습니다.

전: 미국 내 이산가족들에 대한 실태조사도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산가족 중 북한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분도 있고,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완전히 소멸해 그 다음 세대는 이산가족을 만나려는 절박함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산가족 된 지6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거기다 건강 문제도 있는 분들이 있고. 또 이산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기 싫은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이북에 자식을 둔 사람이나 여동생 남동생 혈육을 둔 사람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절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책임자 입장에서 미-북 이산 가족들의 만남을 어떤 형식으로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남북한은 적십자를 통해 100여명씩 금강산에서 만나고 했는데 미국의 이산가족상봉지원법을 근거로 미국과 북한 당국이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 몇 명씩 만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겠네요.

이: 그런 것은 협상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방안은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의 실례를 따르는 것입니다. 평양과 미국 국무부에서 협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남북한 처럼, 미국측에서 이산가족들의 명단을 북측에 제출하면 북측은 그쪽의 가족의 생사여부를 확인해서 이쪽에 알리고. 명단에 있는 사람은 상봉할 수 있을 것이고, 건강과 같은 문제로 여행을 못하는 분들은 영상으로 (화상 상봉) 상봉하거나 편지를 왕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봉단에서 누락된 분들은 차기 차차기 식으로 하도록 협상이 되어야 겠죠.

저희 이산가족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신체적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아 지금처럼 중국을 통해 이산 가족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국적십자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 아래 적십자를 통해 들어가는 것이죠.

전: 한국에는 7백여만 명의 이산 가족이 있다고 하는데 백 명에서 2백 명 정도 하는 상봉 상황에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을 포함 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이: 저희 미주 한인들은 포함이 안됩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제도화할 때 미국 시민은 제외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통로를 빌리고 싶다는 것 뿐입니다.

전: 통로를 빌린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이: 미주 한인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원할 경우 현재로서는 중국으로 가는데 암시장을 통해서나 가족을 만납니다. 그래서 남한 통로를 빌린다는 말입니다.

전: 그럼, 미국 내 한인 시민권자 영주권자들이 북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가서 거기서 금강산에 가서 만난다는 얘긴가요?

이: 그런 방안이 바로 협상의 대상입니다.

전: 그러니까, 미국과 북한 정부 간의 합의로 미국 내 한인들과 북한 내 이산가족이 만나게 될 때에 실제 상봉 경로는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란 얘깁니까?

이: 그렇습니다.

전: 이산 가족들이 미국이나 북한 혹은 중국에서 만나는 방안은 생각해 보지 않으셨는지?

이: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닙니다. 당장 급한 것은 미국이 북한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닙니다.

전: 북한 내 가족을 위해 미국의 이산 가족이 북한에 송금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까?

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투명성이 없습니다.

전: 투명성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돈을 보내줘도 받아야 할 가족이 돈을 못받습니다.

전: 북한 당국에서 전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까?

이: 자료가 없어서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 미국에서 북한에 돈을 보낼 때는 금융기관에 보닙니까?

이: 편지로 보내는 수가 있습니다. 암시장이 많습니다.

전: 암 달러 말씀인가요?

이: 아닙니다. 캐나다에 돈을 북쪽에 보내는 브로커, 중개인들이 있습니다. 인편으로 북쪽 가족에게 소식과 돈을 전달해 주는 브로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브로커들이 북한에 형제가 있으니 돈을 보내라고 하고, 이쪽에서는 우리 형제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쪽의 정보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북쪽에 엄마와 여동생을 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베이징 올림픽을 이용해 중국에 가서 만나려 했는데, 그때 북쪽에서는 가족이 죽었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사촌은 살아 있으니 돈을 보내라 해서 5천 달러를 보냈는데, 그 다음에는 그쪽 얘기가 형제들이 다 죽지는 않았다면서 다시 5천 달러를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은 사촌 형제들의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했고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사진을 안 보냈다고 합니다. 전: 이차희 씨의 오빠가 북한에 살아 있으면 몇 살 되셨겠습니까?

이: 살아 계시면74세가 됐을 겁니다.

전: 오빠의 성명은?

이: 이웅희. 희 자 돌림입니다.

전: 오빠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이: “제가 혼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가면 미주 내 전체 이산가족의 추진 일에 지장이 생깁니다. 일을 해 가면서 찾아뵐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찾아 뵐 때 까지 건강하시고 희망을 가져주세요.”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미국에 있는 한인들과 이들의 북한 내 이산 가족의 상봉을 위해 미국 정부의 이산가족상봉지원법을 제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재미이산가족상봉위원회의 이차희 공동회장을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