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대화 여지 남기고 북에 마지막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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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해 강력한 경고가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서울의 박성우 기자와 함께 좀 더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박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이 상당히 결연해 보였는데요. 어땠습니까?

박성우: 이명박 대통령은 10분짜리 담화문을 읽는 동안 시종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를 사용했습니다. 담화문을 발표한 장소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 기념관’의 호국 추모실이었는데요. 이곳은 6.25 전쟁 영웅들의 흉상과 동판이 전시된 곳입니다. 단상 옆에는 대형 태극기를 배치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 직전까지도 원고를 고쳤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담화문에서 직접 거론할지를 놓고 조율을 벌였는데, 최종 원고에는 북한의 책임을 적시하는 대신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은 빼는 걸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진행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뺀 이유는 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박성우: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 대신에 ‘북한’이나 ‘북한 당국’, ‘북한 정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개인을 거명하기보다는 김정일 위원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군부를 총칭”하고자 했다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 대통령이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여전히 북한은 대남 적화 통일의 헛된 꿈에 사로잡혀서 협박과 테러를 자행하고 분열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한다는 면에서도 김정일 일개인을 지목하는 것보다는 “북한 정권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청와대의 이 관계자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음으로써 한국 정부는 남북 간의 미래 지향적인 관계 구축이라는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입니다.

고유환: 전반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책임이고, 또 김정일 위원장이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태이지만, 북한 체제의 속성상 최고 수뇌부와 관련해서는 (북한은)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측이) 최고 수뇌부를 거명하고 직접 비난했을 경우에 남북 관계의 복원이 원천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 정상회담 등 최고 지도자 수준에서 남북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문에서 “북한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앞에 사과하고,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즉각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이것은 북한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기본적 책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앞서 말씀드린 데로 “북한 정권도 이제 변해야 한다”면서 “한반도를 더 이상 동북아의 위험지대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말하고 “남북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남북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려면 대화가 전제돼야 하지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고유환 교수가 분석한 것처럼 남측은 이날 담화문에서 남북 간 대화의 문까지 차단한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대화를 위한 전제가 있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공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는 건데요. 그런데 북한은 현재 천안함 사고는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게 기본 입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김정일’이라는 이름 석 자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공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는 건 북한 정권에게 퇴로를 제공하는 대신에 남측이 받아낼 건 받아내겠다는 계산이 깔린 걸로 분석됩니다.

북측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이날 발표한 남측의 다양한 대북제재 조치의 완화를 검토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국제 사회와의 공조를 통해서 남측이 북한 정권의 목을 더 죄겠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자면, 남측은 이날 북측을 향해 대화의 문은 열어둔 상태로 마지막 경고장을 보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진행자: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다른 중요한 내용도 많았는데요. 다시 한 번 소개해 주시죠.

박성우: 이날 발표된 대북 제재와 대응 방안은 예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몇몇 외신 기자들은 한반도가 다시 7-80년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대화 국면에서 대립 국면으로 바뀐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거지요.

가장 눈에 띄었던 내용은 앞으로 “북한이 남한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한국은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북측의 군사적 도발을 다음부터는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거지요. 자위권과 관련해서 청와대의 이동관 홍보수석은 “군사적 위협의 격퇴뿐 아니라 침해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게 남측 해역으로 북한 배가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든지, 남북 간 교역과 교류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전환점’과 관련해서 이동관 홍보 수석은 “한반도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을 강조한 것은 천안함 이전과 이후의 한반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도 변해야 하고, 우리도 대응에서 달라질 것이라는 걸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남한은 지난 정권 10년 동안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 지원을 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천안함 사태를 일으키는 등 하나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기본 인식이고요. 따라서 한반도 정세의 전환점이 된 북한의 천안함 도발에 대응하고, 또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이날 다양한 대북 제재를 발표하게 된 거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의 영유아에 대한 지원은 유지할 것”이고, “개성공단 문제는 그 특수성을 감안해서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은 지속하겠다는 점, 그리고 개성공단은 현재로서는 남한 정부가 나서서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와 진출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체류 인원도 50~60%가량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현재는 평일 기준으로 남측 인원 1천 명 가량이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명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문제는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는데요. 남북 모두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는 계산이 복잡하다면서요?

박성우: 좀 쉽게 설명하자면, 현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남측이나 북측 모두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120개가량의 남한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지요. 모두 중소기업들이어서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만, 남측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단을 폐쇄할 경우엔 입주 기업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고, 또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상징적 존재를 없앴다는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습니다.

북측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연간 4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 수입을 얻고 있고, 또 현재 중국 등의 외자를 유치하려는 상황에서, 북한이 직접 나서서 공단을 닫을 경우엔 외화벌이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앞으로 외국의 투자를 받을 때도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공단을 닫아버린다면 어느 기업도 북한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도 남한도 쉽사리 개성공단의 존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진행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지요?

박성우: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천안함 사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를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 장관은 특히 기존의 안보리 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는 이번 천안함 사안과 “엄격히 말하면 별개”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 두 개의 제재 결의와는 다른 새로운 제재 결의를 도출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안보리의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최대 변수입니다. 중국의 반대 때문에 천안함과 관련한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긴 힘들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전망인데요. 그래서 유명환 장관도 “앞으로 안보리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수준에서 어떠한 조치가 나올지에 대한 것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과 관련한 새로운 제재 결의가 나오지 않더라도 한국이 단독으로, 혹은 국제사회와 공조 하에 취할 수 있는 대북 조치가 많습니다.

이날 발표된 내용만 보더라도 우선 한국이 단독으로 취하는 조치로는 남북 교역과 경협을 중단하는 게 포함됐습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 교역과 경협 중단으로 북측은 연간 최대 3억 달러 정도의 직접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남측은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포함해서 한국 해역을 운항하는 걸 금지하고, 한국 국민의 북한 방문을 불허하고,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를 불허하고, 대북 지원사업은 원칙적으로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6년간 중단했던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남측이 미국과 함께 할 수 있는 조치로는 서해에서 조만간 실시하겠다는 합동 대잠수함 훈련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조치로는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 올 하반기 중에 한국 해군이 주관해 역내 해상차단훈련을 실시하고, 9월에는 호주가 주관하는 역외 해상차단 훈련에 참가하는 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북한이 이번 천안함 사고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관련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지금 말씀드린 다양한 대북 제재가 지속될 거라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진행자: 박성우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성우: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