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6자회담이 조만간 가시화하지 않을 전망입니다. 북한이 요즘 6자 회담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국제 사회가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해제해야만 한다고 외무성 담화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앵커:
내달에 열린다고 전망되던 6자회담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회담의 재개와 관련해 진전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기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11일 한국전쟁을 종결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논의를 비핵화보다는 먼저 하자고 하더니 18일에는 유엔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고서는 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회담이 지연되는 상황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작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나 다자 회담에 복귀한다는 의사를 나타내면서 그 일시를 밝히지 않았을 때 일부 예상됐습니다. 북한이 이런 입장을 앞으로도 고수하면 회담의 재개 일시를 전망하기는 당분간 어렵습니다. 6자회담의 재개에 일단 먹구름이 끼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앵커:
새해에 들어서면서 6자회담이 조만간 개최된다는 전망이 밝지 않았습니까?
기자:
일단은 그렇다고 전망됐습니다. 북한을 제외한6자회담 당사국은 이 회담이 올해 2월쯤 재개된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은 작년 12월 양자 대화에서 6자회담의 재개와 관련해 공동 이해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앞서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작년 10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일자를 밝히지 않은 채 6자회담을 포함하여 다자회담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신년 공동 사설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바도 있습니다. 그래서 1월 6일 미국 국무부의 커트 캠블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6자회담의 재개가 머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북한 외무성이 18일 발표했다는 성명을 좀 자세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북한 외무성은 “우리가 제재(制裁)의 모자를 쓴 채로 6자회담에 나간다면 그 회담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등한 회담이 아니라 ‘피고’와 ‘판사’의 회담이 되고 만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2005년 9.19 공동성명엔 비핵화가 진척돼야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합의 사항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11일 평화협정 회담을 제의한 성명에서 언급한 ‘6자회담 복귀 전의 제재 해제’라는 방침을 재확인하는 내용입니다. 북한은 이에 앞서 베이징, 모스크바, 유엔본부 등에 주재하는 대사를 동원해 기자 회견을 열고 이를 알리는 여론 몰이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유엔에 주재한 신선호 대사는 12일 북한은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6자회담에 곧 복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앵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이런 주장에 각각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자:
두 나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19일 미국 국무부의 캠블 차관보는 6자회담의 재개 전에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캠블 차관보는 “지금 시점에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 1874호를 재검토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19일 한국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이 발표한 일련의 성명과 관련해 “미북 간 적대 관계의 해소와 평화협정 논의를 먼저 요구하면서 비핵화 논의는 뒤로 미루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유 장관은 “북한이 안보리 제재의 해제를 공개적으로 제시해 6자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책임을 국제 사회에 전가하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면 북한은 무슨 이유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안보리가 내렸던 대북 제재의 해제를 조건으로 내세웠나요?
기자:
유엔의 제재가 발효한 가운데에서는 북한이 무기 수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작년 8월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작년 12월에는 태국 당국에 수출하던 무기가 압류됐습니다. 무기 수출은 북한에 외화 획득의 주요 원천입니다. 중동 국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북한산 무기와 미사일을 구입했습니다. 이제는 구매국이 유엔 제재가 발효한 상황에서는 북한산 무기를 선뜻 사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무기 수출로 북한에 들어 가는 돈이 2-3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라며 “북한은 유엔의 제재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조선정책 특별대표가 양자 대화를 하러 평양을 방문했을 때 시급한 문제인 제재의 해제를 정식으로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앵커:
북한이 조건을 내걸며 6자회담을 거부할 경우 이 회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자:
6자회담의 판 자체가 깨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북핵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이 더 조급한 편입니다. 반면 북한은 판을 깨서 그 부담을 몽땅 안고 가기보다는 판을 유지하며 핵의 보유로 가는 시간을 버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할 때까지 미국의 외교 공세를 견딜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러한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며 외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측이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접점을 찾을 때까지 회담이 겉도는 사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앵커:
양측이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나요?
기자:
접점을 쉽게 찾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현재 6자회담의 재개와 관련해 북한의 ‘선 제재 해제’와 한국과 미국의 ‘선 회담 복귀’가 부딪칩니다. 또 6자회담의 의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선 평화 체제 논의’와 ‘후 비핵화 논의’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선 비핵화 논의’와 ‘후 평화 체제 논의’가 대립합니다. 아직 양쪽에서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제 1718호와 제 1874호는 북한의 핵 실험 때문에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를 해제하려면 국제 사회가 납득할 명분이나 사정 변경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양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회담은 항상 가변적이어서 당사국이 합의만 하면 언제든지 행로가 바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선에서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다만 그 접점을 찾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가 문제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아직 가시화하지 않는 6자회담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