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수해 지원물자 야밤에 몰래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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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적십자사가 신의주 수재민에게 지원하는 쌀과 시멘트 등 지원 물자가 단동 해관을 통해 신의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첫 쌀 지원이지만 지원 물자는 무슨 까닭인지 야간에 어둠 속에서 강을 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김준호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중국 단동 해관의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나갈 시간. 주변이 어둑어둑해진 이 시간에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 10여 대가 줄을 지어 단동 해관으로 들어갑니다.

트럭 전면에는 자그마하게 ‘대한적십자’ 표식이 임시로 붙어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대부분의 중국 사람은 이 차량들이 남한이 북한에 지원하는 수해 지원물자를 싣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합니다.

지원물자 차량들은 아침에 북측에서 나온 북한의 일반 트럭들이 해관을 통해 다 북으로 들어가고 난 뒤, 일과시간 이후에 어둠을 뚫고 압록강 철교를 넘어 신의주로 들어갑니다. 신의주에 도착하면 업무 마감시간을 훨씬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 속을 달려가는 트럭에 어디서 온 무엇을 실었는지 알 방도가 없습니다.

신의주 수재민을 위해 남한 적십자사가 지원하는 물품은 컵라면 300만개와 쌀5,000톤, 그리고 시멘트 1,200톤. 이중 라면은 이미 지난달에 전달됐고 쌀은 9일부터 신의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단둥에 거주하는 남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지원한 물자가 이렇게 쉬쉬하며 북측으로 넘어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미 언론에 발표된 사실이라 이렇게 숨겨서 수송할 이유가 없고 남측에서 지원 물자가 온다는 걸 북측에서도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반면에 북한 사정을 잘 아는 북한출신 화교들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합니다. 북한 측에서 남한 당국에 야간에 조용히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을 것이고 이에 대해 남한 당국과 중국 해관이 협조적이라는 얘깁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한의 정부차원에서 쌀을 지원하는 것은 처음이고 수재를 당한 신의주 주민들에게 지원하는 쌀이지만 수해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습니다.

신의주 출신 화교인 진 모씨는 “이 지원물품들이 수재민들에게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전달된 라면은 “전량 평양으로 실어 보내졌다는 말을 신의주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다고 강조했습니다. 평양으로 실어간 라면은 외국인이 투숙하는 호텔이나 고급 식당으로 보내져 외화벌이에 사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는 얘깁니다. 조리해서 판매할 경우 남한 제품이라는 것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신의주 주민 오 모 씨는 “남조선에서 수해지원 물자가 들어오는 것을 아는 신의주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지원되는 시멘트는 일부만 수해복구에서 사용되고 대부분은 댐 공사장이나 평양의 주택 공사장에 보내질 것이 뻔하다”고 덧붙입니다. 쌀이나 라면도 수해주민들에게 전달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남한의 한 비정부기구의 대표 문 모 씨는 ‘대한적십자사’의 지원방식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라면의 경우 “남한에서 제조한 것을 보내면 남한 상표가 붙어있는 것을 북한 당국에서 주민들에게 분배하기를 꺼릴게 뻔하다”면서 “선양에 진출해 있는 한국 라면회사에서 제조한 것을 구입해서 보내면 중국 상표가 붙어있기 때문에 그중 일부라도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북한 언론은 현재까지 남한 적십자사의 신의주 수재민 지원과 관련한 어떠한 내용도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