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상회담을 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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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지난 주말부터 한국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놓고 언론들이 다양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남북 간 다양한 물밑접촉이 진행됐다는 정황도 보도됐습니다.

서울의 박성우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박성우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먼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한국의 언론들이 지난 주말부터 다양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29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의 BBC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면서 “조만간이라고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시점과 관련해서 가장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라서 관심이 쏠리는 건데요. 외견상으로 볼 때는 남한이 북한보다 먼저 정상회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이건 그만큼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의 물밑 작업이 무르익은 걸 뜻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고 있습니다.


진행자:

어떤 물밑 작업이 있었나요?


박성우:

먼저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북측의 특사 조의사절단이 서울을 찾았습니다. 이때 북측이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후로 지난 해 10월 싱가포르에서 한국의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북측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회동했고, 12월 중순에도 북측의 신임을 받는 재중 동포가 서울을 찾아서 임태희 장관과 다시 만나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남측의 통일부와 북측의 통전부 간에도 11월7일과 14일 개성에서 관련 협의를 진행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건 모두 지난해에 전개된 상황입니다. 올해 들어서도 남북 간에 구체적인 물밑 접촉이 진행된 걸로 보이고,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걸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진행자:

북측도 정상회담을 바라기 때문에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군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회담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지요. 정황을 보더라도 북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은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온갖 비난성 발언을 내뱉고 있을 시점입니다. 왜냐면 남측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고, 한국의 국방부 장관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또 한국의 어느 국책 연구기관이 ‘2012년 이후 김정일 유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전례를 볼 때, 이 정도면 북한은 비난성 발언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다양한 조치를 단행했을 겁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북한은 충분히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행태는 다릅니다. 비록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내고 ‘보복 성전’을 언급했고, 또 서해에서 NLL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북한은 개성공단 회담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측 최고 지도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남측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북한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은 2010년 현 시점에서 남측과 대화를 통해 얻어내야 하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평화문제연구소 장용석 연구실장은 설명합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장용석: 내부의 경제난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 후계 구축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정치적인 이유 등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역시 핵심은 북한이 올 초에 강조했듯이 ‘주민들의 마음을 잡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주민들의 마음을 잡아서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대외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메인 타겟이 남한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박성우:

다시 말해서, 북한은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경제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장용석 실장의 설명입니다. 화폐개혁과 장마당 통제 때문에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올 초부터 북한 지도부가 ‘민심을 잡겠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3대 세습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누그러질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진행자: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겠다’는 건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건데요. 그런데 이런 목표는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와 상충되는 것 아닌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한이 화폐를 개혁하고 장마당을 통제하는 건 후계자에게 ‘안정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물려주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요. 이를 통해서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건데요. 그런데 계획경제를 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는 건 힘들기 때문에, 말씀하신 데로 “상충”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북측 나름의 논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조동호 교수가 1일자 중앙일보 시론에서 밝힌 내용인데요. 북한이 계획경제의 복구와 인민 생활의 향상, 또는 체제수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건 상충되지만, 강성대국의 시발점으로 제시한 2012년까지 “단기적으로” 내세우는 목표로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는 게 내용입니다. 체제 수호를 위해선 지난주 서해에서 북측이 보여줬듯이 무력 사용도 불사하지만, 개성 회담에도 참가해 남측의 경제적 지원도 받아내겠다는 생각을 북한이 하고 있다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북한이 한쪽에선 무력을 사용하고, 또 한쪽에선 개성 회담에 나서거나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작업에 참가하는 건 “우왕좌왕하는 것도 아니고, 내부의 강온 갈등도 아니다”라고 조동호 교수는 평가합니다. 이건 ‘2012년 강성대국의 원년’이라는 목표, 그러니까 후계구도 구축과 경제 성장의 기반 마련, 그리고 체제 안정을 위해 북한이 단기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전술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북측도 남측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생각을 갖고 남측과 물밑 접촉에 나서고 있는 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한국은 북핵 문제의 진전을 정상회담에서도 의제로 삼고자 하잖아요. 김 위원장이 이것까지 염두에 뒀다는 해석인가요?


박성우:

말씀하신 데로, 남측은 핵 문제도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남측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넣고자 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핵 문제의 진전’ 정도로 문안을 조정하고자 하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선호하는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북측도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남측과 논의할 의사는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요. 그리고 북측으로서는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더라도 이른바 ‘남는 장사’를 하는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의 설명인데요. 북한은 작년에 2차 핵실험을 했고, 그에 따른 미국과 유엔의 제재 국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시점에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서 “결과적으로는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덮어버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을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분석했습니다. 이게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느냐’라는 문제와는 별개이지만, 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핵실험으로 고조됐던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고, 이걸 또 제재 국면의 완화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으로 이어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고자 한 걸로 풀이된다고 이 전문가는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춘 거지요. 큰 그림으로 보자면, 핵 문제는 결국은 6자회담에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또 순서를 놓고 볼 때도 6자회담이 먼저 이뤄진 다음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걸로 전망되기 때문에, 만약에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한 성과가 도출된다면 그 후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핵 문제와 관련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예상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한 정부가 요구하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와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이렇게 두 가지가 핵심 의제가 되는 거지요.


진행자:

박성우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성우:

네, 감사합니다.